작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한 국내 상장회사의 절반 이상이 시장 예상치보다 크게 낮은 ‘어닝 쇼크(실적 충격)’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수요 감소로 인한 실적 급감이 반도체, 철강, 화학 등 업종 전반에 걸쳐 현실화한 결과란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실적 악화가 적어도 올해 1분기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어닝쇼크’ 상장사 속출
9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실적 전망치가 있는 유가증권 및 코스닥시장 상장사 가운데 총 157곳이 전날까지 작년 4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이들 기업의 4분기 영업이익 합산액은 20조181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올초 기준 전망치 합산액(32조3035억원)보다 37.5% 적은 것이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156곳의 4분기 영업이익 합산액도 15조8752억원으로 연초 전망치(25조933억원)보다 36.7% 줄었다.
절반이 넘는 85곳은 전망치를 크게 밑도는 어닝 쇼크 수준의 실적을 내놨다. 4분기 영업이익이 연초 전망치보다 10% 이상 적은 기업은 71곳이었다. 이 중 23곳은 영업이익이 전망치보다 50% 넘게 줄었다. 14개 기업은 영업이익 흑자가 전망됐지만 실제론 영업적자를 냈다. 통상 실적이 시장 전망치보다 10% 이상 적으면 어닝 쇼크로 분류한다. 4분기 내내 실적 전망치가 지속적으로 하향 조정됐지만 실제 실적은 이보다 훨씬 더 나빴다.
화학, 반도체, 철강업종 등에서 어닝 쇼크가 컸다. 경기에 민감한 업종들이다. 화학업종 12개 기업의 영업이익은 1조6881억원으로 전망됐지만 실제로는 5805억원에 불과했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중국 봉쇄 장기화로 인한 업황 부진과 수익성 하락, 화물연대 파업 피해 등이 겹친 결과”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업종 13개 기업은 4분기 영업이익 합산액이 연초 전망치 대비 59% 쪼그라든 2조7184억원에 그쳤다. 포스코홀딩스와 현대제철 등 철강기업은 흑자를 거둘 것으로 전망됐지만 각각 4254억원, 275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은행, 전자장비 업종도 전망치 대비 부진한 실적을 냈다.
종목별로는 LG전자의 어닝 쇼크가 가장 컸다. 전망치 대비 실제 영업이익이 84.5% 빠졌다. 삼성증권(-82.2%), LX세미콘(-79.5%), 금호건설(-76.3%), LG화학(-75.6%), HD현대(-74.6%) 등도 전망치 대비 실적 감소폭이 컸다.
반면 자동차, 자동차부품, 건설 업종은 양호한 실적을 거뒀다.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 업체 9곳의 4분기 영업이익은 6조9979억원으로 전망치를 소폭 웃돌았다. 현대건설·삼성엔지니어링 등 건설업종 9개 기업도 전망치에 부합하는 8860억원의 4분기 영업이익을 거뒀다.
○“실적 부진 당분간 지속”
실적 흐름과 달리 연초 국내 증시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는 연초 이후 각각 11.5%, 16.8% 상승했다. 실적이 부진한 와중에도 주가가 오르면서 증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부담은 커졌다. 코스피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12.5배 수준으로 올라섰다. 2021년 코스피지수가 3200~3300선에 있을 때와 같은 수준까지 올랐다.
실적 전망치 하향 조정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실적 전망치가 있는 246개 상장사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총 171조8464억원으로 예상됐다. 1개월 전(194조4217억원)에 비해 20조원 이상 빠졌다.
전문가들은 실적이 올해 1분기까지 하향세를 지속하다 2분기부터 상승세로 돌아설 것으로 내다봤다. 김민규 KB증권 연구원은 “실적 전망치가 내려가는 속도는 연초 절정을 이루다 이제는 조금씩 느려지고 있다”며 “올해 1분기 실적 시즌인 4~5월 이후부터는 실적 반등세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3N’으로 불리는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의 희비가 엇갈렸다. 신작 게임의 덕을 톡톡히 누린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역대 최고 매출 기록을 경신했다. 반면 신작 게임이 없는 데다 대형 인수합병(M&A)으로 재무적인 압박을 받고 있는 넷마블은 10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신작에 희비 엇갈린 3N넥슨과 엔씨소프트는 지난해에 역대 최고 매출을 올렸다. 넥슨의 작년 매출은 전년 대비 29% 증가한 3537억엔(약 3조3946억원), 영업이익은 13% 늘어난 1037억엔(약 9952억원)이었다. 기존 유명작 ‘던전앤파이터’ 지식재산권(IP)을 모바일 게임으로 활용한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모바일 IP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으로 재해석한 ‘히트2’ 등이 실적을 끌어올렸다는 설명이다.엔씨소프트는 연간 매출 2조5718억원, 영업이익 559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1% 늘었고 영업이익은 49% 뛰었다. 모바일 게임 매출도 사업 시작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늘어난 1조9343억원이었다.반면 넷마블은 10년 만에 적자로 전환했다. 작년 매출 2조6734억원, 영업손실 1044억원을 냈다. 매출은 전년 대비 6.6% 늘었지만 영업이익이 67.1% 급감했다. 작년 신작이 부진한 와중에 영업비용이 늘어난 탓이다. 인건비(7794억원), 마케팅비(5243억원) 등이 각각 전년 대비 22%, 31% 증가했다. 환율과 금리가 급등해 소셜카지노 기업 스핀엑스 인수와 관련한 재무적 부담도 커졌다.○크래프톤·카겜은 ‘으쓱’3N을 제외한 게임사들의 실적은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다만 1~3분기의 호실적에 비해 4분기 실적이 예상에 못 미친 경우가 많았다. 게임사들의 올해 실적이 작년만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크래프톤은 모바일 부문(1조2528억원)과 PC 게임 매출(4650억원) 외에 콘솔 게임(1041억원)에서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매출(1조8540억원)은 2021년보다 조금 줄었지만 영업이익(7516억원)이 16% 늘어나는 등 질적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표다.카카오게임즈는 작년 매출(1조1477억원)이 13%, 영업이익(1777억원)은 59% 증가했다. ‘오딘’과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등의 게임이 장기간 차트 상위권에 머물며 인기를 끈 덕분이다. 스크린골프 관련 플랫폼인 ‘카카오VX’ 등 비(非)게임 부문 매출 성장도 더해졌다.각 게임사가 콘퍼런스콜 등을 통해 발표한 신작 게임과 신규사업 진출 계획도 눈길을 끌었다. 엔씨소프트는 ‘쓰론 앤 리버티(TL)’를 상반기에 선보일 예정이다. 인공지능(AI)을 게임 제작에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한다. 카카오게임즈는 오딘에 이어 ‘아키에이지 워’를 조만간 출시하기로 했다. 크래프톤은 딥러닝 분야 투자를 지속해서 늘리고 연내 메타버스 관련 서비스를 출시하겠다고 밝혔다.이상은/선한결 기자 selee@hankyung.com
BNK·DGB·JB금융 등 지방 금융지주 3사의 지난해 실적은 희비가 엇갈렸다. 주력 계열사인 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수익 증가 속에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증권과 보험 등 비은행 부문은 부진했다.광주은행과 전북은행의 모기업인 JB금융지주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601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고 9일 공시했다. 전년(5066억원)보다 18.6% 늘어난 것으로 2013년 지주사 출범 이후 역대 최대 실적이다.광주은행과 전북은행의 순이익은 전년보다 각각 33%, 13.5% 증가한 2582억원과 2076억원을 기록했다. JB금융이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증권과 보험 계열사가 없는 점도 실적 개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은행 실적 호조로 JB금융은 자본 대비 수익성을 나타내는 자기자본수익률(ROE)이 13.9%, 자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했는지 보여주는 총자산이익률(ROA)은 1.05%로 국내 금융지주 중 1위를 차지했다.대구은행을 자회사로 둔 DGB금융지주는 작년에 순이익 4062억원을 올렸다고 이날 공시했다. 2021년 순이익(5031억원)에 비해 19.3% 감소했다. 계열사인 하이투자증권의 순이익이 376억원으로 전년 대비 77.1% 급감한 게 영향을 미쳤다.주식시장 거래 부진과 부동산시장 침체에 따른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문 수익 정체 등이 이유로 꼽힌다. 반면 대구은행의 작년 순이익은 전년보다 18.9% 늘어난 3925억원을 기록했다.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을 자회사로 거느린 BNK금융지주는 지난 2일 실적 발표를 통해 작년 순이익이 8102억원으로 전년(7910억원)보다 2.4%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의 순이익은 4558억원과 2790억원으로 전년보다 각각 13.2%와 21% 늘었다.하지만 BNK투자증권의 순이익은 50.6% 줄어든 573억원에 그쳤다. 채권금리 상승과 주가지수 하락으로 유가증권 관련 손실이 커졌기 때문이다. BNK자산운용과 BNK저축은행은 각각 138억원과 38억원 적자를 냈다.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하나금융은 지난해 연간 당기순이익 3조6257억원을 시현했다고 9일 발표했다. 전년(3조3261억원) 대비 2.8% 증가한 수치다. 주된 실적 호조 요인으로는 이자이익 증대가 꼽힌다. 이자이익(8조9198억원)과 수수료이익(1조7445억원)을 합친 핵심 이익은 전년(1조3636억원) 대비 14.7% 늘어난 10조6642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순이자마진(NIM)은 1.96%, 자기자본이익율(ROE) 10.28%, 총자산이익률(ROA) 0.67% 등을 기록했다.기업 대출자산과 외환 이익도 증가했다. 외환매익은 전년(4778억원) 대비 1246.7% 증가한 5161억원, 수출입 등 외환수수료는 같은 기간(1458억원) 37% 늘어난 2071억원을 달성했다.하나금융은 지난해 연간 누적 기준 1조1135억원 규모의 충당금 등 전입액을 적립했다. 그룹 대손비용률은 0.29%로 나타났다. 지난 4분기 고정이하여신비율은 0.34%로 직전 분기보다 0.01% 줄었다. 부실 대출을 털어내기 위해 충당금을 활용 가능한 비율(NPL 커버리지 비율)은 전 분기(175.7%)보다 12.1%포인트 증가한 187.8%를 기록했다.주요 계열사인 하나은행의 작년 연결 당기순이익은 3조1692억원으로 전년(2조5704억원)보다 23.3% 증가했다. 이자이익(7조6087억원)과 수수료이익(7712억원)을 포함한 은행 핵심이익은 8조3799억원으로 같은 기간(6조8708억원) 대비 22% 늘었다. NPL 커버리지 비율은 212.1%로 전 분기 대비 4.8%포인트 증가했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0.21%, 연체율은 0.2%를 기록했다.2022년 기말현금배당을 보통주 1주당 2550원으로 결정됐다. 중간 배당 800원으르 포함한 총현금배당은 3350원으로 내달 주주총회를 통해 확정된다. 그룹 연간 배당 성향은 27%, 2022년 종가 기준 배당 수익률은 약 8% 수준이다.연내 1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도 진행할 방침이다. 그룹 총주주환원율 목표는 50%다.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