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집중탐구

‘테슬라 가격 인하 대표 수혜주’ 꼽혀
고객사 두 곳에 매출 80% 집중돼…그나마 완화된 수준
[마켓PRO] 테슬라에 울고 웃는 엘앤에프…머스크만 믿어도 될까?
드디어 터졌습니다. 2차전지 섹터 이야깁니다. 연초 이후 주식 시장에선 섹터·테마 별로 순환매가 돌며 주가지수가 강하게 반등했지만, 작년 한 해 동안 가장 주목받았던 2차전지 섹터가 시장을 주도하는 날은 올해 들어서는 드물었죠. 그러다 공격적인 가격 할인으로 전기차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 기름을 부은 테슬라가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내놓자 한국의 2차전지 관련 기업들의 주가도 강하게 반등했습니다.

테슬라 관련 이슈는 국내 2차전지 섹터 주가에 영향력이 크죠. 그 중에서도 테슬라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양극재 공급이 매출의 80%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엘앤에프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엘앤에프는 종가 기준으로 작년 12월1일의 22만4000원을 단기 고점으로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한달 동안 21.17% 하락해 17만3500원으로 작년 거래를 마쳤습니다. 올해 들어서도 설 명절 전까지는 횡보하는 데 그쳤고요. 하지만 연휴 이후 첫 거래일인 지난 25일에 6.21%, 이튿날인 26일엔 8.36% 급등했습니다. 27일에도 상승세가 이어지며 0.48% 오른 20만8500원으로 마감됐습니다.
[마켓PRO] 테슬라에 울고 웃는 엘앤에프…머스크만 믿어도 될까?
반등의 계기는 단연 테슬라입니다. 한국의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19일(현지시간) 종가가 127.17달러였는데, 연휴가 끝나고 나니 143.89달러(현지시간 24일)로 13.15%가 급등한 겁니다. 이에 더해 지난 25일(현지시간) 장 마감 무렵 테슬라가 작년 4분기에 1.19달러의 주당순이익(EPS)를 기록했다고 발표하고, 장 마감 이후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전기차 시장 경쟁이 격화되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자신감을 드러내자 26일(현지시간) 하루만에 10.97%가 급등했습니다.

머스크는 “1월 들어 회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주문이 몰려들고 있다. 현재 주문량이 생산 속도의 두 배에 달한다”며 “자동차 시장 전체의 위축에도 수요는 좋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가격 인하가 수요 증가로 연결됐다고 자평한 겁니다.

전기차업체 실적은 ‘서프라이즈’인데…양극재업체는 ‘쇼크’

부자들의 단골 식당 주인이 무조건 돈을 잘 번다는 법은 없잖아요. 지금까지 발표된 완성차업체와 양극재업체의 작년 4분기 실적이 딱 그렇습니다. 테슬라에 이어 실적을 발표한 현대차의 영업이익도 사상 최대이자 컨센서스를 약 10% 웃돈 3조3592억원입니다. 반면 엘앤에프의 양극재 경쟁사인 에코프로비엠은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컨센서스보다 19.9% 적은 970억원을 기록했죠.

아직 작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엘앤에프 역시 작년 말엔 1037억원으로 집계됐던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이달 26일엔 995억원까지 내려앉았습니다. 작년 3분기 실적시즌이 종료된 11월15일 이후 추정치를 업데이트하지 않은 증권사가 더 많은 점을 감안하면 실제 영업이익은 995억원에도 못 미치는 ‘어닝 쇼크’일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엘앤에프의 작년 4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로 860억원을 제시한 김현태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연말에 진행된 고객사의 재고조정으로 12월 출하량이 부진했던 게 실적 하회 (전망의) 주 원인”이라고 말했습니다. 테슬라의 중국 상하이 공장의 가동 중단에 따른 양극재 출하량 감소 때문에 부진한 실적이 예상된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엘앤에프의 목표주가를 기존 40만원에서 35만원으로 내렸습니다.

BNK투자증권은 올해 들어 엘앤에프의 실적 추정치를 업데이트한 6개 증권사 중 유일하게 목표주가를 하향했습니다. 그래도 투자의견은 ‘매수’를 유지했습니다. “양극재 시장의 고성장 전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나머지 증권사들도 대체로 올해 양극재의 평균판매가격(ASP)가 하락할 가능성을 제기하면서도 출하량 증가로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화투자증권이 제시한 엘앤에프의 작년 4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876억원으로 BNK투자증권 다음으로 낮지만, 이 증권사의 이용욱 연구원은 “테슬라가 주요 모델의 가격을 인하해 중국에 이어 미국·유럽에서도 판매량이 재차 상승하는 분위기로, 엘앤에프의 가동률도 안정적인 상승이 예상된다”며 엘앤에프를 ‘최선호주’로 꼽았습니다.

테슬라 지속 성장 가능성은?

문제는 테슬라가 계속해서 엘앤에프의 성장을 이끌어줄 수 있느냐입니다. 그러려면 우선 테슬라의 성장이 지속돼야 할 겁니다. 하지만 테슬라의 지속 성장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립니다.

테슬라의 작년 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 이후 미국의 자산운용사 얼라이언스 번스타인은 테슬라의 올해 EPS 추정치를 기존 3.80달러에서 3.54달러로 낮췄습니다. 이 회사의 토니 사코나기 애널리스트는 “강력한 주문은 긍정적이지만 자동차 부문의 매출총이익률이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다”고 설명했죠.

사실 테슬라가 계속해서 경쟁사를 압도했다면 가격을 깎을 이유가 없었겠죠.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전기차 업체 BYD는 작년 상반기에 64만7000대의 친환경차를 팔아 57만5000대 판매에 그친 테슬라를 제친 바 있습니다. 머스크 역시 지난 25일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중국업체가 테슬라의 뒤를 이어 세계 2위의 전기차업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역량을 인정했죠.
사진=한경DB
사진=한경DB
테슬라의 경쟁력을 낮춰 보는 건 아닙니다. 주요 시장에서 20% 내외의 가격 인하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엄청난 경쟁력이죠.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존 완성차업체들은 아직 순수전기차 판매로 많은 이익을 남기지는 못하는 상황이니까요.

그들이 오랫동안 만들어온 내연기관차 판매를 합쳐도 마찬가지입니다. 테슬라의 작년 4분기 실적이 발표된 뒤 차량 한 대당 영업이익이 현대차의 5배 남짓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으니까요. ‘테슬라가 치킨게임으로 기존 완성차업체들을 몰락시키려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주식시장에서 가볍게 흘려버리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테슬라의 4분기 실적 발표 이후 골드만삭스는 12개월 후 목표주가로 200달러를 제시했습니다. 26일(현지시간) 종가 대비 약 40%의 상승 여력이 남아 있는 수준이군요.

매출의 84%가 외부고객 두 곳에 집중돼

이처럼 주식시장에서는 테슬라의 성장이 적어도 당분간은 지속된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우선 현재 주식시장의 전망이 맞다고 가정해도, 엘앤에프가 지금 수준의 수혜를 앞으로도 받을 것으로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테슬라가 계속해서 엘앤에프로부터 공급받는 양극재를 늘린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전력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원래 일본 파나소닉으로부터 배터리를 독점적으로 공급받던 테슬라가 공급선을 LG에너지솔루션으로 확장하면서 국내 2차전지 섹터 전체가 들썩이기도 했잖아요. 전통의 원통형전지 강자인 삼성SDI가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할 가능성도 잊을 만하면 제기되고 있습니다.

만약 현실화되면 테슬라로부터 나오는 파이를 에코프로비엠과 나눠야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전기차 시장 개화 직전의 국내 2차전지 산업의 양극재-완제품 밸류체인 구도는 ‘에코프로그룹-삼성SDI’와 ‘엘앤에프-LG화학 전지사업본부(현 LG에너지솔루션)’로 형성돼 있었거든요. 엘앤에프는 LG그룹에서 분리된 GS그룹 관계사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허제홍 새로닉스(엘앤에프의 최대주주) 대표가 허창수 GS 명예회장의 5촌 조카입니다.
엘앤에프의 작년 3분기 분기보고서 캡처.
엘앤에프의 작년 3분기 분기보고서 캡처.
물론 엘앤에프가 LG에너지솔루션과 테슬라만 바라보고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닙니다. 영업비밀 침해 소송으로 LG그룹과는 불편한 관계인 SK온에 1조2176억원 규모의 양극재를 공급하기로 하는 계약을 2021년 맺었습니다. 작년 3분기 기준 매출 비중 10% 이상인 외부고객 두 곳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84%로, 1년 전의 93% 대비 집중도가 일부 완화되기도 했고요.

📂엘앤에프 프로필(1월13일 종가 기준)
현재주가:
20만8500원
PER(12개월 포워드): 18.02배
적정주가: 35만4625원
2023년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 5146억원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