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물가 상승세가 둔화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한국에서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정점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내년 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베이비스텝(기준금리 한 번에 0.25%포인트 인상)을 밟는 등 긴축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이다.

14일 정부와 한은에 따르면 소비자물가는 지난 7월 정점을 지난 것으로 파악됐다. 한은이 전날 공개한 지난달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 7월을 정점으로 점차 낮아지고 있다”고 봤다. 또 “아직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는 근원인플레이션율도 경기 하방 압력 확대 등으로 완만히 둔화하면서 내년 하반기 2.3%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훈 통계청장도 지난 10월 국회의 국정감사에서 물가 정점과 관련해 “현실적으로 7월이 가장 높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7월 6.7%를 기록하며 24년 만에 최대 폭을 기록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5.0%로 둔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한은이 내년 초 연 3.5%로 기준금리 인상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SC그룹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한은이 내년 1월 연 3.25%인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후 인하하지 않고 유지할 것으로 관측했다.

김진욱 씨티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내년 1분기까지 한은의 최종 기준금리가 연 3.5%일 확률은 60%, 연 3.25%일 확률은 40%”라며 “내년 7월부터 정책금리 인하 사이클에 진입해 같은 해 3분기부터 매 분기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해 2024년 1분기에는 기준금리가 연 2.0%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과의 금리 차로 인한 외화 유출과 환율 급등 가능성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시장 예상대로 Fed가 14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면 한국과 미국(상단 기준 연 4.5%)의 기준금리 격차는 1.25%포인트로 벌어진다. 역대 최대 한·미 금리 역전 폭인 1.5%포인트(1996~2001년)에 근접한 수준이다. 한은이 내년 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도 1.0%포인트 차가 된다.

이 때문에 경제 상황에 따라 외국인 자금이 대거 유출되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금통위원은 “국가별로 비교해 보면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곧바로 각국의 환율 움직임에 연결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가파른 가운데 글로벌 유동성도 축소되고 있는 만큼 미국과의 금리 역전 폭이 일정 수준을 넘어 확대되면 외환 부문의 리스크가 재차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