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신문로 흥국생명 본사 모습. 사진=한경DB
서울 종로구 신문로 흥국생명 본사 모습. 사진=한경DB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흥국생명의 4000억원 유상증자에 참여하려는 태광산업 이사진에 대주주가 아니라 회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줄 것을 촉구하는 내용증명을 13일 발송했다.

트러스톤운용은 태광산업 이사회가 유상증자 참여를 승인할 것에 대비해 이사회결의효력정지가처분, 이사회결의무효확인 등 강력한 법적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트러스톤운용은 "오는 14일로 예정된 태광산업 이사회에서 흥국생명이 추진하는 4000억원의 유상증자 참여와 관련된 안건이 논의될 예정인 것으로 안다"며 "이사진에게 공정한 결정을 촉구하는 내용증명을 이날 발송했다"고 밝혔다.

태광산업 이사회는 현재 사내이사인 조진환 대표, 정철현 대표와 사외이사인 김대근 이사, 나정인 이사, 최원준 이사 등 모두 5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안건은 상법상 자기거래에 해당해 이사 5명 중 4명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된다. 트러스톤은 내용증명에서 이번 유상증자가 상법 제542조의9 제1항에 따라 금지되는 신용공여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해당 규정은 상장회사가 지분 10% 이상을 소유한 주요주주 및 특수관계인에게 자금 지원적 성격의 증권 매입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흥국생명은 태광산업의 최대주주인 이호진 회장의 특수관계인에 해당하는 만큼, 태광산업이 흥국생명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흥국생명의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면 상법 제542조의9에서 금지하는 신용공여에 해당한다는 것이 트러스톤의 설명이다.

이어 트러스톤운용은 "이번 유상증자를 찬성한 이사는 상법 제624조의2에 따라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고, 상법 제634조의3에 따라 태광산업 또한 벌금을 물게 될 것"이라면서 그 경우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이사에게 책임을 묻는 등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트러스톤은 유상증자참여가 공정거래법상 계열회사 부당지원 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상 계열회사의 지분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는 회사가 제3자 배정 방식을 통해 해당 계열회사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제3자가 인수하지 않을 정도의 고가로 주식을 인수하는 경우 '계열회사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한다. 이번 유상증자의 거래조건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긴급한 자금조달이 필요한 흥국생명 내부 상황과 높은 시장금리를 고려하면 이번 신주발행이 시장가격보다 상당히 낮은 금액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외부 제3자의 인수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태광산업 이사회는 이번 유상증자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외부의 제3자가 같은 조건으로 투자를 할지를 따져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트러스톤운용의 설명이다.

트러스톤운용은 이번 유상증자 참여와 관련해 생명보험업에 대한 충분한 전문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태광산업 이사회가 회사 이익의 극대화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외부 요인에 의해 졸속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일을 촉발한 흥국생명의 콜옵션 번복 사태 1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유상증자에 참여를 추진하는 것은 회사이익보다는 이호진 회장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현재 흥국생명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지분 56.3%를 갖고 있다. 나머지 지분도 이 전 회장 일가와 대한화섬 등 관계사가 모두 보유하고 있다. 반면 태광산업은 이 전 회장이 29.4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일가와 특수관계자 지분을 합치면 지분율은 54.53%에 달하지만 흥국생명 주식은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흥국생명은 최근 콜옵션 거부로 촉발된 유동성위기 해결차원에서 발행한 RP상환을 위해 태광산업을 대상으로 4000억원의 유상증자를 추진해왔다.

태광산업 지분 5.8%를 보유한 트러스톤운용은 "이 같은 움직임은 태광산업 일반주주의 이익을 명백히 침해하는 행위"라며 반대입장을 밝히는 입장문을 지난 9일 발표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