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티세미콘 리더스투자 인수 때
유진, 콜옵션 100% 대주주에 제공
에디슨모터스 주가조작 세력이
CB 넘겨받아 장내서 차익 실현
반도체 테스트 전문업체 에이티세미콘은 2019년 이후 총 11건의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이를 통해 조달한 돈(860억원)이 시가총액 1012억원(28일 종가 기준)과 맞먹는다. 매년 적자폭은 심각하다. 작년(-341억원)과 올해 3분기 누적(-649억원) 순손실이 1000억원에 육박한다. 전형적인 부실 ‘CB 공장’이다.
에이티세미콘은 작년 5월 CB 200억원어치를 발행해 코스닥 신기술투자회사인 리더스기술투자 경영권을 인수했다. 이 무자본 인수합병(M&A)의 자금을 유진투자증권이 댄 셈이다.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 전자단기사채를 팔아 자금을 모은 후 에이티세미콘 CB를 사들였다. CB에 부실이 생기면 유진투자증권이 갚아주는 확약 조항도 넣었다. 그러면서 CB에 대한 콜옵션 100%를 대주주 측에 넘겼다. 에이티세미콘 CB 금리는 연 6%. 리더스기술투자 지분과 일부 예금을 담보로 잡았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 담당자는 “유진투자증권이 거둔 수익은 5% 안팎으로 추정되는데 한계기업의 부도 가능성을 고려하면 적은 수익을 위해 큰 리스크를 진 것”이라며 의아해했다. 유진투자증권 관계자는 “당시 에이티세미콘 증자 주관 업무를 맡아 그 연장선에서 리더스기술투자 인수금융을 대준 것”이라고 말했다.
자회사 세운 후 CB 인수토록 해
에이티세미콘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CB를 발행하고 유통했다. 2020년엔 자본금 30억원의 에이티에이엠씨를 100% 자회사로 설립한 뒤 에이티세미콘 CB를 인수하도록 했다. 한 회계사는 “100% 자회사가 모회사 CB를 인수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라며 “회사가 스스로 CB 머니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인한 꼴”이라고 말했다. 에이티세미콘은 또 정윤호 부사장이 설립해 지분 100%를 보유한 삼성코퍼레이션을 대상으로 CB를 발행하기도 했다.
CB는 장외로 돌고 돌다가 주가가 반짝하면 주식으로 전환돼 장내에서 팔렸다. CB 매물 폭탄은 연중 내내 쏟아지고 있다. 2020년 이후 주식으로 전환된 에이티세미콘의 CB 규모는 516억원에 이른다. 작년 4월 무상감자를 시행한 직후 1426만 주였던 발행주식 수는 현재 7228만 주로 다섯 배 이상 늘었다. 주가는 2020년 9월 8000원에서 1400원(28일 종가 기준)까지 추락했다.
에디슨모터스 세력의 ‘CB 차익거래’
이 와중에 ‘선수’들은 짭짤한 수익을 내고 있다. 에이티세미콘은 유진투자증권이 보유했던 CB 200억원어치를 포함해 전체 300억원 규모의 CB를 지난 3월 아임(현 아임존)에 넘겼다. 아임은 한수지 대표가 최대주주, 한광종 씨가 감사로 있는 투자회사다. 두 사람은 에디슨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 연루된 인물이다. 이들은 강영권 에디슨모터스 회장 측이 인수한 에디슨EV(스마트솔루션즈) 유앤아이(이노시스) 등에서 CB 투자로 큰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아임은 한 대표 등에게 에이티세미콘 CB 중 일부를 장외로 넘겼다. 이들은 주가가 오를 때마다 CB를 주식으로 전환해 차익을 거뒀다. 한 대표가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올린 이익은 43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아임은 에이티세미콘에 CB 인수대금 300억원을 완납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납입한 대금은 130억원에 불과하다. 아임은 단계적으로 에이티세미콘 CB를 처분해 인수대금을 마련하고 있다. 주가가 부진하면 납입 일정을 연기하고 있다. 한 기업금융 전문가는 “이미 발행된 CB로 땅 짚고 헤엄치기식의 차익거래를 하고 있는 셈”이라며 “결국 개인투자자 피해로 돌아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방위산업 부품업체 휴센텍은 지난해 9월 7일 전환사채(CB)를 발행해 500억원을 조달했다. 그중 300억원을 다른 법인 출자에 쓰겠다고 공시했다. CB 인수자는 자기자본 기준 국내 6위 증권사 메리츠증권이었다. 휴센텍은 그로부터 두 달 전인 7월 리튬플러스 창업자 전웅 대표를 등기이사로 선임했다. 9월 3일에는 리튬플러스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 20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시장은 휴센텍이 수산화리튬 제조사 리튬플러스를 인수하는 수순으로 해석했다. 주가는 리튬 테마를 타고 급등했다. 하지만 휴센텍은 CB를 발행해 조달한 500억원 중 단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후 감사인 의견거절로 주식거래는 정지됐고, 경영진은 횡령·배임 혐의로 고소당했다.수수께끼 같은 자금조달의 진실이 드러난 건 지난 4월 정정공시를 통해서다. ‘무늬만 자금조달’이었다. 메리츠는 500억원을 휴센텍에 납입하자마자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통화안정채권을 사도록 한 다음 담보로 잡았다. 3월 상장폐지 이슈가 불거지자 담보권을 행사해 원금을 회수했다. 이 과정에서 메리츠는 최소 32억원의 수수료를 챙겼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은행의 ‘꺾기’(기업에 돈을 빌려준 뒤 다시 예치하도록 강제하는 행위)나 사채업자의 ‘찍기’(유상증자로 돈을 잠시 회사에 넣어줬다가 빼가는 행위)를 연상시키는 거래”라고 말했다. ‘CB 공장’에 수천억원 ‘무늬만 투자’대형 증권사마저 ‘CB 공장’을 활용한 무자본 인수합병(M&A) 세력을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해당 세력과 이해를 일치시키면 무위험으로 수수료 및 투자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휴센텍 대주주가 쓰지도 못할 돈을 조달하기 위해 CB를 발행한 건 CB 콜옵션(매수선택권)을 손에 넣기 위해서다. 무자본 M&A를 통한 테마로 주가 부양에 성공하면 CB를 되사와 주식으로 전환해 큰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메리츠는 휴센텍 CB의 70%를 되살 수 있는 콜옵션을 대주주에 넘겼다. 일반 CB 콜옵션 비중보다 두 배 높은 수준이다. 계획대로 주가가 급등했다면 메리츠도 남은 CB 30%를 주식으로 전환해 추가 수익을 올렸을 수 있다. 회사의 미래나 소액주주 보호는 고려사항이 아니었다.메리츠가 지난해 9월 이후 집행한 ‘무늬만 CB 투자’는 휴센텍을 포함해 3500억원이 넘는다. 얍엑스(500억원) 노블엠앤비(300억원) 금호전기(300억원) 에이치앤비디자인(270억원) 세종메디칼(200억원) 등이다. 특히 작년 말 금융당국이 CB 콜옵션 및 리픽싱(전환가격 조정) 규제 강화를 하기 직전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KH그룹·에디슨 조력자 역할메리츠증권은 KH그룹과 에디슨모터스에도 적지 않은 자금을 댔다.KH그룹에는 올초 강원 알펜시아리조트 인수 자금을 지원했다. KH필룩스·IHQ(각각 350억원), KH건설·KH전자(각각 150억원) 등이 발행한 CB 1000억원을 인수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면서 알펜시아리조트의 부동산 자산을 담보로 잡았다. 역시 무자본 M&A에 자금을 제공하면서 손실 리스크는 최소화한 무위험 투자였다.메리츠는 또 6월 IHQ(200억원), KH건설(100억원) 등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인수했다. 해당 주식에는 KH그룹 계열사가 상호 보증 형태로 부동산 자산 등을 담보로 제공했다.메리츠는 에디슨모터스에 자금을 지원한 ‘큰손’ 투자조합에 자금을 융통해주기도 했다. 에디슨EV(현 스마트솔루션즈)가 인수한 유앤아이(현 이노시스)는 7월 한투오, 여의도글로벌투자 등을 대상으로 600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했는데, 메리츠증권이 발행 당일 CB 전량을 장외에서 인수해줬다. 동시에 CB 80%에 대한 콜옵션을 와이에스에이치홀딩스에 넘겼다. 이 거래의 핵심 인물인 한모씨 등은 에디슨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과거에도 ‘무늬만 BW’ 인수로 징계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과거 사채업자나 저축은행이 했던 ‘머니게임’의 돈줄 역할을 증권사들이 대신하고 있다”며 “금융감독원이 ‘CB 공장’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메리츠증권은 2014년에도 ‘무늬만 BW 투자’를 주도하다 기관주의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다. 빌려준 돈을 예금으로 예치하게 한 후 질권을 설정했다. 다만 이번에는 ‘회사가 동의하면 자금을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포함시켰다. 한 변호사는 “자본시장법 위반을 회피하기 위한 조항이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며 “대주주는 배임, 증권사는 배임 동조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메리츠증권 관계자는 “위험 자본을 공급하되 리스크를 면밀히 검토해 투자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증권사가 하는 일”이라며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기업들이 CB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투자자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최석철/조진형 기자 dolsoi@hankyung.com
게임사 위메이드가 발행한 가상자산(암호화폐) '위믹스'가 국내 5대 코인 거래소로부터 일제히 상장폐지(거래지원 종료) 결정을 통보받았다. 이런 가운데 증권가에선 위메이드가 입을 타격이 상당할 것이란 의견이 제기됐다.김세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닥사(DAXA)가 위메이드 코인 위믹스의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지난달 27일 투자유의 종목으로 지정한지 약 4주만"이라며 "닥사가 위믹스 상장폐지를 결정한 이유는 위믹스의 중대한 유통량 위반, 투자자들에 대한 잘못된 정보 제공, 소명기간 중 제출된 자료의 오류와 신뢰 훼손 등이다"면서 "위믹스 관리능력에 대한 신뢰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닥사란 업비트와 빗썸, 코빗, 코인원, 고팍스 등 국내 주요 5대 코인 거래소로 구성된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다.위믹스는 투자자보호를 위해 상장 폐지 예고기간을 거친 뒤 내달 8일 오후 8시에 5대 거래소에서 거래가 종료될 예정이다.이번 결정에 따라 향후 위메이드와 자회사 신규 프로젝트, 신작 출시가 불투명해졌다는 의견이 나온다.김 연구원은 "4분기 중 블록체인 게임 플랫폼인 '위믹스 플레이'에 온보딩 예정 게임들의 출시가 불투명해졌다"고 밝혔다. 12월에 출시돼 온보딩될 예정이었던 위메이드플레이의 애니팡 시리즈는 현재 사전예약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그는 "위믹스는 대부분의 거래가 국내에서 이뤄지고 국내 홀더들의 비중이 높다"며 "이에 따라 국내 5대 거래소에서 일시에 상장폐지된 영향을 클 전망"이라고 말했다.한편 위메이드는 법적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는 유의종목 지정 이후 줄곧 "상장 폐지는 없다"고 강조해 왔다. 최근 지스타에서도 자신감을 보인 만큼 이를 믿은 투자자들에 대한 책임론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김 연구원의 의견이다. 위믹스 원화 거래 상장폐지 직후 거래소별 가처분 신청을 예고했다.김 연구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유통량'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위믹스는 디파이 서비스에 담보가 잡힌 위믹스까지 유통량으로 간주돼서 유의종목으로 지정된 사례다. 보통 유통량으로 인해 상장 폐지가 된 코인은 공시 없이 토큰을 새로 발행하거나, 유통량의 절반 가까이를 락업 해제한 경우였기 때문이다.김 연구원은 "디파이 서비스인 '코코아파이낸스'에 담보로 잡혀있었던 위믹스는 총 3580만개다. 이에 위메이드는 코코아파이낸스에서 빌린 스테이블코인을 전액 상환 후 청산 대비용으로 마련해뒀던 위믹스까지 환수해 총 6341만개 위믹스를 다시 준비금으로 환수한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약 6000만개 이상의 위믹스가 기존에 보고했던 유통량에서 배제되어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존 유통량 3억1842만개의 약 19~20%에 해당하는 물량이다.그는 "결과적으로 최근 FTX 사태 등으로 인해 가상자산 발행사에 대한 투자자 및 규제 당국의 불신이 커지면서 과감한 결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비슷한 구조를 지닌 다른 게임사를 비롯한 가상자산 프로젝트들에 있어 경종을 울리는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무자본 인수합병(M&A)의 경영권 거래는 일반적인 M&A와 계약 방식이 다르다. 일반적 M&A에서는 경영권을 인수하는 전략적 투자자(SI)가 기존 대주주 지분(구주)을 프리미엄을 주고 사들이고, 추가 자본 유치가 필요하면 재무적 투자자(FI)가 신주를 인수한다. 무자본 M&A에서는 반대다. 구주를 사들이는 건 투자조합이다. SI는 할인된 가격에 신주를 인수해 최대주주에 올라선다. SI와 FI 모두 구주와 신주를 섞어서 인수하지만 우선순위가 그렇다는 뜻이다.주객이 전도된 이유는 FI가 머니게임을 기획하고 SI를 끌어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FI들은 왜 구주를 선호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구주는 보호예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모 방식으로 발행된 신주와 전환사채(CB)가 1년 동안 팔 수 없는 것과 대비된다. 구주 투자자인 투자조합은 M&A 과정에서 주가가 폭등하면 시장에서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더 확실한 수익을 FI들이 가져가는 셈이다. 물론 투자조합은 구주뿐 아니라 CB에도 투자해 1년이 지난 뒤 테마를 띄워 추가로 수익을 내기도 한다.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이런 M&A 사례는 흔하다. 강영권 에디슨모터스 회장이 지난해 5월 에디슨EV(현 스마트솔루션즈) 경영권 인수 계약을 할 때 구주를 가장 많이 인수한 건 메리골드투자조합, 아임홀딩스 등 투자회사들이었다. 이후 에디슨EV는 쌍용자동차 인수 기대로 급등했고 이들은 바로 차익을 실현했다. 이들 중 일부는 최근 주가조작 사건에서 주식매입대금을 조달한 혐의로 구속됐다.SI가 구주를 먼저 사들인 뒤 투자조합에 넘기는 경우도 많다. 하이드로리튬(옛 코리아에스이)이 그런 사례다. 리튬플러스는 지난달 21일 하이드로리튬 구주 일부(132만 주)를 리튬클럽사모투자펀드조합1호와 제이에이치투자조합1호에 넘겼다. 주당 양도가격은 리튬플러스가 9월 매입하기로 한 가격(5367원)보다 10원 높은 5377원이었다. 양도 당시 시가(1만300원)를 감안하면 약 100% 수익이 바로 보장된 셈이다. 24일 종가 2만9300원을 기준으로 하면 이 투자조합의 수익률은 445%에 달한다.무자본 M&A에서 모종의 역할이 클수록 보호예수 없는 구주를 많이 가져가는 경향이 있다는 게 금융감독원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테마와 자금을 쥐고 있는 세력이 거래의 구조를 짜는 일이 많다 보니 경영권 양수도 구조가 꼬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