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대주주로 보유하고 있던 HMM 지분 20.69%를 조기 매각하기로 하고 LX판토스를 비롯한 인수 후보군과의 접촉에 나섰다. 지난해 1월 부산항 신항에서 23만t급인 HMM 로테르담호가 수출화물을 선적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보유하고 있던 HMM 지분 20.69%를 조기 매각하기로 하고 LX판토스를 비롯한 인수 후보군과의 접촉에 나섰다. 지난해 1월 부산항 신항에서 23만t급인 HMM 로테르담호가 수출화물을 선적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은행이 예상과 달리 HMM 조기 매각에 시동을 걸었다. 당초 정부와 산은은 HMM의 경쟁력을 더 높일 때까지 민영화를 서두르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지만 매각 적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은 “급할 것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LX판토스를 비롯해 현대글로비스, 포스코, CJ그룹 등 인수 후보군과의 접촉을 늘리고 있다. 해운업 경기 하락으로 HMM 기업가치에 대한 평가가 급변할 수 있다는 점은 매각 작업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산은, “지금이 매각 적기”

해운경기 꺾이자 HMM 조기매각 선회…지분 '쪼개팔기'도 테이블에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산은의 해묵은 골칫거리였던 대우조선해양을 한화그룹에 통매각하는 ‘대형딜’을 성사시켰다. 강 회장은 산은이 보유한 민간기업 지분은 신속히 처분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자금을 통해 산은 본연의 정책금융기관 역할에 더 충실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자칫하면 매각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있다. 해운업계에선 새로 건조된 선박이 대거 인도되는 내년부터 ‘치킨게임’이 재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HMM 수익성도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HMM은 2015년 2분기부터 5년가량 적자를 내다 2020년 2분기 흑자전환한 뒤 최근까지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HMM 실적이 꺾이기 전에 서둘러 매각하는 게 산은이 공적자금을 최대한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산은이 시장 예상보다 더 빨리 HMM 매각에 시동을 건 배경이다.

판토스, 현대, 포스코 등 후보군

산은은 보유 지분 20.69%를 전량 매각하길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 곳에 지분을 통째로 팔지, 2~3곳에 쪼개 팔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이는 HMM 지분을 인수하려는 기업의 자금여력과 시장 상황 등에 따라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 산하 해양진흥공사는 보유 중인 19.96% 중 소수 지분을 매각하되 ‘의미있는 지분’을 계속 보유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더라도 정부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산은이 접촉한 인수후보는 LX판토스를 비롯해 현대글로비스, 포스코, CJ그룹, SM상선 등이다. LX판토스는 범LG계 물류기업으로 HMM을 인수하면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 현대차그룹도 HMM 인수 가능성이 거론되는 곳이다. 현대글로비스가 HMM을 인수하면 명실상부 종합물류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도 과거 대주상선(거양해운)을 설립해 5년간 운영한 경험이 있어 해운업 재진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제철원료 등 대량화물 화주가 해운업에 진출하려면 정책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듣도록 해운법(24조 7항)에 규정돼 있는 점은 변수다. CJ그룹도 LX판토스처럼 물류부문 시너지와 자금력을 감안해 산은의 사전접촉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파산한 한진해운을 인수하고, 이미 HMM 지분 5.52%(특수관계인 포함)를 보유하고 있는 SM상선도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SM상선은 한진해운 인수 후 통합 과정에서◁ 해진공과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이 때문에 유력 후보군에선 제외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난제는 영구채 처리

HMM 매각의 난제 중 하나는 산은과 해진공이 가지고 있는 약 2조7000억원어치의 HMM 영구채(영구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가 꼽힌다. 지분 환산 시 30%에 달하는 규모다. 영구채가 모두 주식으로 전환되면 인수 측이 매입해야 할 금액이 늘어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HMM이 영구채를 조기 상환하면 HMM 민영화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산은 등이 이 과정에서 전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배임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지훈/황정환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