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건설 대표이사를 교체하는 등 ‘롯데건설발(發) 그룹 위기설’을 잠재우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위기설의 진원지부터 수습해 시장의 불신을 촉발할 작은 불씨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당초 이번 주로 예정됐던 그룹 정기 임원 인사는 다음달 중순으로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금 15조' 롯데…신동빈 "위기설 잠재워야"

동시다발로 터지는 자금 수요

21일 롯데 고위 관계자는 “일본에 체류 중인 신동빈 회장이 매일 화상 회의를 통해 각 계열사의 자금 현황을 체크 중”이라며 “일각에서 제기하는 롯데 자금이상설에 빠르게 선제 대응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분기 말 기준 롯데그룹의 전체 보유 현금은 약 15조원(현금성 자산 및 단기금융상품 포함)으로 파악된다. 총부채 중 장기차입금 비중은 70%에 달한다. 롯데 관계자는 “1년 이내 부채를 한꺼번에 상환하라고 해도 그룹 보유 현금으로 모두 충당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데도 계열사별로 자금 수요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와 그룹 경영진은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롯데가 IMM프라이빗에쿼티와 손잡고 인수한 한샘의 영업실적이 악화하는 것도 자금 흐름에 악영향을 줄 요인으로 꼽힌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IMM이 조성한 펀드가 한샘을 인수할 때 은행 등으로부터 인수금융을 조달하면서 실적과 주가를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기로 약속했다”며 “주가 급락 등으로 상환 유예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펀드 투자자인 롯데도 수백억원가량을 추가 출자해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롯데는 지난해 9월 롯데지주와 하이마트가 참여해 총 3000억원을 IMM이 한샘 인수용 등으로 조성한 펀드에 출자했다. 롯데의 추가 출자금은 한샘의 증자나 자사주 매입 등에 쓰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해 IB업계에선 롯데가 한샘 주식을 공개 매수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롯데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IMM이 보유한 한샘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롯데가 한샘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면 주가가 바닥 수준인 현 시점에서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가전과 가구를 결합한 온·오프라인 유통사업에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다. 백화점 출신인 황영근 롯데하이마트 대표도 가전·가구 영업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으로 평가받는다.

임원 인사 신중 모드

롯데가 건설 대표 교체 카드를 꺼낸 건 일각에서 제기되는 위기설을 조속히 잠재우기 위해서라는 게 중론이다. 롯데 관계자는 “최근 2년간 12월 1일자로 단행한 임원 인사를 보름쯤 연기하기로 했다”며 “몇몇 임원 검증 절차에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룹 주력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의 사정이 호전되는 점은 위기설을 잠재울 긍정적 요인으로 평가된다. 이날 롯데케미칼은 기업설명회(IR)를 열고 “올 4분기에 흑자 전환이 예상된다”며 “2조7000억원 규모의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대금을 포함해 내년 총 4조원의 설비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전기차용 배터리 소재로 쓰이는 동박을 만드는 기업이다. 롯데케미칼은 미국에 제조 공장 신설을 검토 중이다.

롯데건설 지원과 관련해선 “케미칼의 대여금 5000억원은 3개월 만기 대여로, 현재까지 만기 연장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롯데케미칼은 롯데건설 대여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 1조원의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