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자동차 기업 르노가 일본 닛산자동차 보유 지분율을 43%에서 15%로 낮춘다. 닛산이 보유한 르노 지분율(15%)과 같아지면서 프랑스 정부와 르노가 주도권을 쥐고 있던 일본·프랑스 자동차연합의 지배구조가 20여 년 만에 대등해질 전망이다. 르노는 7조~8조원에 달하는 전기차 투자금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닛산, 23년 만에 르노와 '동등한 관계' 된다

닛산 지배구조 바뀐다

블룸버그통신은 르노가 닛산 보유 지분을 현재의 43%에서 15% 수준으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고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르면 이번주 두 회사가 최종 합의를 마무리하고, 다음달 15일 기업설명회에서 세부적인 내용을 정식 발표할 계획이다. 르노가 닛산 지분을 줄이는 대신 닛산은 르노가 새로 설립하는 전기차 자회사의 지분을 15%가량 사들일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루카 드 메오 르노 최고경영자(CEO)도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르노와 닛산의 관계를) 보다 대등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며 보유 지분을 닛산과 같은 수준까지 낮출 계획임을 내비쳤다.

르노는 1999년 경영난에 빠진 닛산 지분 37%를 6000억엔(약 5조8508억원)에 사들였다. 2002년에는 지분율을 43%까지 늘렸다. 같은 해 닛산도 르노 지분을 15% 인수했다. 2016년 닛산이 미쓰비시자동차 지분 34%를 사들이면서 르노·닛산·미쓰비시 자동차연합이 결성됐다.

세 회사는 표면적으로 ‘자동차연합’의 틀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프랑스 정부와 르노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구도였다. 프랑스 정부는 르노 지분 15%를 갖고 있다.

프랑스는 2014년 상장사 주식을 2년 이상 보유한 주주의 의결권을 두 배로 인정하는 플로랑주법을 제정했다. 플로랑주법으로 프랑스 정부의 르노 의결권은 30%로 늘었다. 이후 프랑스 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육성을 명분으로 르노의 일본 연합회사인 닛산을 영향력 아래 두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2019년에는 르노와 닛산 합병을 제안해 일본 측 반발을 샀다.

반면 닛산은 르노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현지 법령에 의해 의결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르노가 닛산 보유 지분을 40% 미만으로 낮추면 닛산의 의결권이 되살아난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르노가 43% 지분을 근거로 닛산의 임원 지명권을 갖는 점도 닛산이 오랫동안 지분율 조정을 요구해온 이유다.

지난해 닛산과 르노의 세계 판매량은 각각 407만 대와 270만 대였다. 닛산은 매출과 판매량이 더 작은 르노가 자동차연합 주도권을 쥐는 점에도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전환 급한 르노의 양보

르노가 20년 만에 닛산 지분율을 대폭 낮추려는 것은 경영난과 전기차 전환 계획에 따른 자금난 때문이다. 르노는 판매 부진으로 2020년까지 2년 연속 적자를 냈다. 지난해 흑자 전환했지만 올 5월 프랑스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인 러시아에서의 철수를 결정하면서 자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르노는 지난 2월 사업부를 내연기관 차량과 전기차로 분리해 본격적으로 전기차 기업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전기차 개발을 위해서는 거액의 투자금이 필요하다. 르노가 닛산 지분율을 낮추는 한편 닛산에 전기차 자회사 출자를 요청하게 된 배경이다. 프랑스 정부도 르노가 닛산 지분율을 낮추는 데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르노가 닛산 지분 28%를 매각하면 6000억엔(약 5조7457억원)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닛산은 르노의 전기차 자회사 지분을 사들이는 데 5억~7억5000만달러(약 7135억~1조703억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미쓰비시자동차도 르노 전기차 자회사에 비슷한 규모로 출자를 검토하고 있다. 지배구조 관계가 정리되면 르노는 총 7조~8조원의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