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금리 기조가 굳어지면서 금융시장 전반에 혼란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증시를 둘러싼 거시경제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물가·저금리 환경 속에 득세했던 성장주 대신 가치주에 투자 전략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역사는 반복…"향후 3년간 가치주가 뜬다"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가치주 장세

11일 DB금융투자는 ‘앞으로 3년간 투자자의 생존은 가치주 전략이 책임진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지난 100년간 주식시장에서는 산업혁명을 통해 형성된 거품(버블)이 사라진 후 가치주가 강세를 보이는 현상이 반복돼왔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말 정보기술(IT) 버블이 끝난 뒤 2000년대 초반 아모레G·롯데칠성·신세계 등 가치주가 주도주로 떠오른 게 대표적이다.

DB금융투자는 2020~2021년 4차 산업혁명 기대에 따라 펼쳐진 버블장이 올 들어 마무리됐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향후 3년간 가치주 투자가 주식시장의 주류를 이룰 것으로 전망했다.

설태현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현재 국내 증시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역사적 하단까지 내려온 만큼 가치주에 투자하기 최적의 시기”라며 “미국 등은 여전히 밸류에이션이 장기 평균을 웃돌고 있어 저가 매수를 노린 글로벌 자금이 국내 증시에 유입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올해와 같은 급락장 이후 가치주가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는 분석도 있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2003년과 2009년 S&P500지수 내 PBR(주가순자산비율) 하위 25% 종목군의 연간 주가 수익률은 각각 35%, 94%를 기록했다. 비교지수인 S&P500지수를 각각 9%포인트, 71%포인트 웃돌았다. PBR이 낮다는 것은 기업의 자산가치 대비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가치주 척도로 사용된다.

과거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보다 높았던 시기에 가치주가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는 점도 ‘가치주 강세론’을 뒷받침한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금리가 성장률보다 높았던 2004~2006년까지 저PBR 종목군이 가장 높은 성과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저PER·저PBR 종목 담아볼까

전문가들은 밸류에이션이 낮은 기업을 골라내는 것이 가치주 투자의 첫걸음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국내 증시가 급락하면서 PER(주가수익비율)과 PBR이 역사적 하단에 근접한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는 조언이다.

DB금융투자는 코스피200 편입종목 가운데 PER, PBR, 주가매출비율(PSR)이 모두 낮은 종목을 추려내 가치주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현시점에서는 한화생명, 이마트, 효성티앤씨, 한화, 동국제강, 삼양홀딩스, 한국금융지주, 메리츠금융지주, 현대제철, 한국가스공사 등이 유망 종목으로 꼽혔다.

다만 밸류에이션이 낮은 기업은 ‘가치주의 함정(밸류에이션 트랩)’에 빠질 위험이 있다. 주가 급락으로 현재 주가가 싼 것처럼 보이지만 미래의 실적 하향을 감안하면 실제 주가가 싸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주환원정책이 우수하고, 좋은 경영진과 지배구조를 갖춘 곳을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이유다.

국내 가치투자 대가인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고금리 시대에는 자산가치가 높고 현금을 많이 들고 있는 전통 가치주의 매력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가치주 중에서도 SK, 포스코홀딩스 등 저평가된 지주사가 상승세를 탈 가능성이 높은 종목으로 꼽혔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