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 능력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에 무역적자까지 악화하면서 복합 위기가 증폭되고 있지만 정부가 일사불란하게 대처하지 못해 오히려 시장 혼란을 부추기는 등 안이하게 대응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원·달러 환율 대처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환율이 1200원을 넘어 1300원대 후반으로 급등할 때도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는 식으로 대응해 ‘안이하다’고 비판받았다. 그러다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서자 부랴부랴 국민연금과 한국은행의 외환스와프, 조선사 선물환 매도 지원 등 대책을 쏟아냈다. 정부 내에서조차 “기획재정부가 세종에서 자기들끼리 있으니 형식 논리에 갇혀 최근 경제위기와 관련한 시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무역수지와 관련해서도 정부는 안이한 인식으로 비판받았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무역적자가 계속되는 것과 관련해 SNS에서 “경상수지가 흑자여서 크게 염려할 상황이 아니다”고 했을 때다. 이로부터 한 달도 안 돼 한은은 “8월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정책당국 간 혼선도 시장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25일 “(미국 금리 인상을) 가파르게 쫓아가자니 국내 경기 문제와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는 이창용 한은 총재가 “미국의 최종 금리가 (한은의 기존) 전제조건에서 벗어났다”며 빅스텝을 시사한 것과 온도 차가 있는 발언이다.대통령실과 경제팀 사이에서도 ‘엇박자’가 나고 있다. 대통령실은 21일 한·미 정상회담 관련 현지 브리핑에서 “한·미 금융안정 논의에 통화스와프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총재는 다음날인 22일 “통화스와프는 이론적으로는 필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이 같은 상황이 줄을 잇자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25일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정부 대응이 미진한 것 같아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하지만 대통령실마저 비속어 논란 등으로 소모적인 정쟁에 빠져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임도원/좌동욱 기자 van7691@hankyung.com
원·달러 환율이 치솟자 '달러 사재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은 "(외환)위기 때 금을 모으던 국민이 외국인보다 더 맹렬한 기세로 달러를 사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다.김 전 차관은 지난 23일 페이스북에 "지금 국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달러를 사는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며 "1997년 외환위기 때는 금을 모아서 나라를 구하자고 나섰던 국민들이 이번에는 한국물을 팔고 떠나는 외국인보다 더 맹렬한 기세로 달러 사기에 바쁘다"고 적었다.그러면서 "일본은 단 한 차례도 금리를 인상하지 않아 미국과 금리 역전 현상이 극심한데도 엔화는 원화보다 약간 더 절하되는 데 그치고 있다"며 "기축통화로서 엔화의 저력과 대외 순자산이 우리보다 월등히 많은 일본의 사정도 작용하겠지만, 내국인의 달러 사재기 규모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김 전 차관은 "외환 자유화 시대에 내국인이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지금과 같이 심리가 중요한 시기에 내국인이 제일 발 빠르게 자국 통화 약세에 베팅하는 길이 너무나도 쉽고 무제한으로 열려 있다는 것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원·달러 환율은 올해 들어 16.3% 올랐다. 같은 기간 엔·달러 환율은 20% 상승했다. 김 전 차관의 지적대로 엔화가 원화보다 약간 더 절하되는 데 그쳤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지 않은 걸 고려하면 원화 약세가 더 두드러진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그렇다면 달러 사재기가 원·달러 환율을 압박하고 있는 건 사실일까?한국은행의 지난달 거주자 외화 예금 동향에 따르면 국내 달러 예금 잔액은 749억달러로, 전달 대비 15억7000만달러 감소했다. 이 가운데 기업의 달러화 예금은 10억2000만달러 줄어든 629억6000만달러로 집계됐다.개인의 달러화 예금은 119억4000만달러로 전달보다 5억5000만달러 감소했다. 달러화 예금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5.9%로 2016년 8월(15.7%) 이후 6년 만에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예금 잔액으로 보면 개인의 달러 사재기 움직임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한은 관계자 역시 "올해 들어 환율이 오를 때 개인들은 이익 실현을 위해 달러를 팔았다"고 설명했다. 개인이 달러를 팔면 원·달러 환율이 내리는 데 도움이 된다.하지만 '달러 사재기'를 '해외 투자'로 넓게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올해 들어 7월까지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는 388억2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해외주식 투자는 343억1000달러에 달한다. 해외 투자는 원화를 달러로 바꿔서 이뤄지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 상승에 압박이 된다. 물론 국제수지상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는 서학개미와 같은 개인의 투자와 국민연금 등 연기금 투자도 포함돼 있다. 그럼에도 해외투자 급증에 따라 달러 매입이 크게 늘면서 원·달러 환율을 밀어올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한은 관계자는 "원화 가치 하락이 최근 두드러지는 것은 해외투자 급증에 따른 내국인의 달러 수요 때문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올해 들어 환차익을 보기 위한 불법 외환거래 적발 금액도 급증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관세청으로부터 받은 '불법 외환거래 적발 현황'에 따르면 올해 들어 관세청이 적발한 외환 사범 건수는 58건으로, 금액으로는 2조3494억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적발 금액 1조3256억원보다 77.2%나 많은 금액이다.일부 금융권 고위 관계자들은 "원·달러 환율은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것"이라며 달러 투자를 공개적으로 부추기고 있다. 금융기업 임원 A씨는 최근 SNS에 "2030년대 원·달러 환율 2000원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수십년간 한국의 국제 경쟁력은 괄목할만한 모습을 보였다"면서도 "지난 40년간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성장을 보였음에도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었다"고 언급했다.그러면서 "지금 들고 있는 달러를 원화로 다시 바꾸려는 마음을 고쳐먹고, 일정부문의 달러는 장기로 들고 가는 것도 고려해 보시라"며 "매월마다 미국 우량주식 장기 분할매수가 좋은 재테크 전략"이라고 했다.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원화 가치 하락, 달러화 가치 상승)하면서 현대차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업계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통상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기업으로 꼽히는 완성차 업계의 단기 실적 개선에는 도움이 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니켈, 구리 등 원자재 가격 상승 영향을 받아 비용 부담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27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최근 13년6개월 만에 1400원대를 돌파한 원·달러 환율은 이날 오후 3시 기준 전날보다 소폭 내려 1420원대 후반에서 등락 중이다.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내년 1분기까지 꾸준히 올라 1450~1460원대까지 뛸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수출 기업이 주로 포진해 있는 완성차 업계는 단기적으로 환율 상승이 실적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해외 이익을 달러화로 거둬들이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 2분기 매출 35조9999억원, 영업이익 2조9798억원으로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바 있다.실제로 지난 2분기 원·달러 환율은 전년 동기 대비 12.3% 올랐다. 현대차는 이 기간 순이익에서 약 6000억원, 기아는 5090억원의 환율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올 상반기 기준 현대차는 전체 매출의 55%, 기아는 62%가 수출 물량이다.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 3분기에도 매출액 컨센서스(예상치 평균)이 34조249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8.64%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2조647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4.8% 증가할 것으로 추정됐다.노동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완성차 업계는 환율이 10% 오를 때마다 마진이 약 3.3%포인트 상승해왔다"며 "완성차 기업들의 직전 12개월 예상 매출액이 지난해 초 대비 25% 증가했는데 환율 효과까지 더하면 올 3분기 실적 개선세는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다만 환율 상승으로 인한 원자재값 상승은 장기적으로 고민되는 대목. 니켈, 구리 등 완성차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값을 달러화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기업들의 원자재 수입가격도 함께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생산비가 늘어 장기적으로는 차값 인상을 부를 수 있다.현대차 관계자는 "원자재와 물류비는 주로 장기계약을 맺기 때문에 당장 이번 분기에 반영된다고 볼 순 없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원자재값 상승으로 비용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