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7월 06일 17:12 자본 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오범조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부교수/ 오경은 상명대학교 계당교양교육원 조교수
오범조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부교수/ 오경은 상명대학교 계당교양교육원 조교수
인포데믹스(infodemics)는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s)을 합친 단어다. 다보스포럼에선 사람들의 불안을 야기하고 종국에 사회 시스템을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인포데믹스를 ‘21세기의 흑사병’이라고 칭했다. 이번 컬럼에서는 에밀 슈바이저의 회화를 매개로 이 21세기의 흑사병과 중세 흑사병 간의 유사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 당시 경험했듯 전염 경로와 차단·예방법을 모르는 무차별적 전염병의 공포는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한다. 그러나 의과학기술의 발전 덕에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해결책을 찾고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의 빠른 개발과 접종을 역사적 팬데믹들과 비교하면 인류의 자기 구제 능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중세의 흑사병(페스트)은 수세기 동안 치료 불가능한 전염병이었다. 전염 방식과 경로에 대한 이해, 무엇보다도 치료제와 예방책 개발에 무지했던 시대에 치사율 높은 전염병의 창궐은 중세인들을 오랜 기간 혼돈과 공포에 몰아넣었다.

지식의 발달로 팬데믹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과거보다 문명화되고 세련되어졌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COVID-19 시기 대중이 보여준 양상은 실소가 나올만큼 중세적이었다. 과학적 근거 없는 ‘썰’의 유행, 가짜 뉴스의 기승, 전염 기전에 대한 이해 대신 희생양 물색 등이 변함없이 등장했던 것이다.

흑사병이 처음 창궐한 곳은 현재 중국의 주변 지역이며 중동의 순교자 길과 무역로를 통해 유럽 전역으로 퍼진 것으로 현대에 과학적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14세기 유럽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이 병의 근원이라 보았다. 기독교인에 비해 유대교인이 눈에 띄게 감염자 수가 적었던 것이 문제였다. 그들은 이것이 유대인들이 식수원에 ‘악’을 뿌린 증거라고 주장했다. 유럽 내에서는 이 가짜 뉴스로 인해 2천여 개의 유대인 공동체가 핍박받았다.
에밀 슈바이저의 '스트라스부르크 유대인 대학살'/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홈페이지
에밀 슈바이저의 '스트라스부르크 유대인 대학살'/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홈페이지
위의 그림은 1349년 2월 14일 독일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있었던 흑사병 퇴치를 위한 유대인 화형식을 그렸다. 붉은 화염에 휩싸여 고통에 울부짖는 사람들이 실루엣 처리되어 배경을 이루는데, 전경의 중앙에 큰 십자가를 든 이와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 사건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듯 보인다.

아기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젊은 여인의 간절한 몸짓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영유아들이 제 가족에게서 분리된다. 추기경에 무릎을 꿇고 아이를 돌려 달라 두 손을 모아 빌던 남성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쪽에는 서류를 빼앗기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유대인 노인과 단도를 찬 젊은 병사 간의 몸싸움이 일어나고 있다. 사건의 정당성을 주장하듯 군인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의 관심은 부유한 유대인의 귀중품을 약탈하는 데 있을 뿐이다. 이 그림은 유럽 기독교도가 정치 경제적 이유로 생겨난 반유대 정서를 증폭시켜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으로 축척한 부를 찬탈하기 위해 흑사병을 이용했음을 주장한다.

정말 유대인들은 흑사병에 원인을 제공했을까? 우선 흑사병(페스트)은 그람음성 간균인 여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균이 감염을 일으키는 급성 열성 전염병으로 림프절의 통증, 심각한 열성 염증반응, 혹은 호흡부전과 심혈관계 부전 등의 증상을 일으킨다. 그렇다면 왜 중세 기독교인들에 비해 유대인들이 흑사병에 덜 걸렸던 것일까?

뉴욕대학교 의대 마틴 제이 블레이저 박사는 이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첫째 여타 공동체와 달리 유대인들은 그 수가 적은만큼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했을 것, 둘째 유대인 축제인 유월절에는 집에서 곡류를 없애야했으므로 병을 옮기는 쥐들이 적었을 것을 꼽는다. 페스트균은 기본적으로 쥐에 기생한다. 이 때 쥐벼룩이 쥐의 피를 빨아먹는 과정에서 페스트균이 쥐벼룩에게 전파되고, 쥐벼룩이 사람을 물거나 페스트에 걸린 환자의 비말을 통해 감염된다. 실제로 중세 흑사병은 주로 봄, 유월절을 즈음해서 그 위세가 강화되곤 했었다.

쥐들이 옮긴 페스트균은 그럼 어디서 왔을까? 이제 그 원인은 유대인들로부터 점점 멀어져간다. 과학사가들은 1252년 몽골제국의 4대 황제인 몽케 칸의 부대가 오늘 날의 버마지역까지 진출할 때에 페스트균의 숙주인 벼룩을 지닌 설치류들과 접촉했다가 유라시아 스텝지대의 몽골 무역로를 통해 흑해 지역까지 그것을 퍼트렸으며, 여기에서 병균을 지닌 쥐들이 배를 통해 유럽 항구도시들로 퍼져나간 것으로 설명한다. 이보다 천년 전에 이미 인도와 이집트의 선원들이 야생 흑쥐를 인도 밖으로 유출시켰고 선사시대에 아프리카에 자생하던 페스트균을 누군가 북쪽으로 이동시켰으니 이들에게도 책임을 물을 것인가? 병에 대한 공포가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얽혀 잘못된 정보를 만들고 결국 심각한 개인적 피해와 사회적 혼란을 유발했던 것이다.

이러한 인포데믹스 현상은 우리 시대에 매스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속도로 더욱 많은 대중에게 영향을 준다. 코로나 유행 초기 과도한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불필요한 곳에 방역이 지원되는 것을 종종 목격했다. 이에 따라 정작 중증 환자가 적시에 치료를 받지 못한 사례도 흔하게 경험한 바 있다. 이렇듯 인포데믹스는 단순한 잘못된 정보를 넘어 대중을 호도해 현장 방역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과학은 승리할 것이다”라는 슬로건처럼, 과학적 지식을 통해 COVID 19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또한 실제 감염도 전세계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새로운 전염병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고 있는 이때, 과거의 실수를 거울삼아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왜곡된 정보들을 걸러내는 개인과 사회의 성숙한 노력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