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한 달 만에 40% 가까이 하락했다. 글로벌 경기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구리 가격은 17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밀, 옥수수 등 곡물 가격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수준으로 내려갔다.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친 것 아니냐는 분석과 경기 침체 신호탄이라는 우려가 함께 나오고 있다.
천연가스·목재값 고점 대비 60% '뚝'…"경기침체 조짐 나타나"
원자재 가격 안정세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간) 국제 원자재와 곡물 가격이 하락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연초에 MMbtu(백만 Btu)당 3.63달러였던 미국 내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달 초 9.32달러로 156% 이상 치솟았다가 이달 초 5.73달러로 38%가량 급락했다. 올초 배럴당 70달러대였던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도 지난달 120달러를 돌파했다가 100달러대로 떨어졌다.

공급 증가로 수급 여건이 호전된 영향이 컸다. 미국 최대 천연가스 수출 창구인 텍사스 가스 터미널에 화재가 나면서 유럽 수출이 중단돼 미국 내 천연가스 재고가 증가했다고 WSJ는 전했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지난달 18~24일 미국 내 원유 생산량은 하루 평균 1210만 배럴로 코로나19 확산 시기인 2020년 4월 이후 가장 많았다.

구리 가격도 한 달 만에 파운드당 4.55달러에서 3.57달러로 21% 이상 내려갔다. 3.5달러대는 2021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6월 한 달 동안 면화 가격도 33%가량 빠졌다. WSJ는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끝나자 구매 수요가 상품에서 여행 같은 서비스로 이동하면서 구리와 면화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목재 가격도 5월에만 31% 급락했다. 기준금리 상승 후 대출금리가 급등해 신규 주택 시장이 냉각되자 목재 시장의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게 WSJ의 설명이다.

WSJ는 금융정보제공업체 팩트셋을 인용해 지난달 말 목재와 천연가스 가격이 올해 최고점보다 60% 넘게 빠졌다고 전했다. 상품 투자업체 리노의 루이 나벨리에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국제 상품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것은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경기 침체 신호일 수도
세계적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의 수출 길이 막히면서 급등하던 국제 곡물 가격도 하락세다. 국제 밀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지난 3월 부셸당 1425달러 선까지 올랐다가 한 달 뒤 900달러대로 내려왔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5월 1277달러대로 반등했지만 다시 지난달 말 831달러로 떨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2월 24일(874달러)보다 낮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옥수수 가격도 부셸당 800달러대에서 610달러로 떨어졌다. 680달러 선이던 전쟁 이전보다 낮아졌다. 한때 품귀 현상을 빚던 해바라기씨유 등 식물성 기름 가격도 상승세가 멈췄다. 최근 가뭄이 해소되자 올해 미국과 유럽, 호주 지역의 곡물 작황이 개선될 것이란 전망이 확산하고 있는 영향이라고 WSJ는 전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상품 선물시장에 몰려든 투자자들이 자금을 대거 빼고 있는 점도 상품 가격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트레이시 앨런 JP모간체이스 상품 전략가는 “지난달 넷째 주에만 상품 선물시장에서 약 150억달러가 빠져나가면서 4주 연속 자금이 순유출됐다”고 했다.

이 같은 하락세를 경기 침체 조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원자재 전문 거래업체인 스톤엑스그룹의 중개담당인 크레이그 터너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경기를 꺾이게 했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서도 “많은 펀드매니저가 침체 쪽에 돈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