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의 유동성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유명 암호화폐 헤지펀드인 스리애로즈캐피털이 파산한 가운데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시스템이 거대한 도박판과 같다는 지적도 나왔다.

2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암호화폐 업계의 유동성 문제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보다 심각하다”며 그 이유 중 하나로 코인 대출 등을 하는 현행 디파이 시스템을 지목했다.

암호화폐 업체들이 동종업계 안에서만 코인을 빌려주는 폐쇄적 방식으로 움직일 뿐 실물 경제의 유동성과는 거의 무관한 생태계를 구축했다고 지적했다. WSJ는 디파이가 규제받지 않는 그림자 금융을 복제했고 실체는 ‘카드로 만든 집’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실물경제와 무관하게 코인 채굴이나 예치, 거래 등에 기반한 디파이는 코인 가격이 상승한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존속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200억달러가량의 자산을 보유했던 암호화폐 대출업체 셀시어스는 최근 자산인출 동결을 결정했다. 또 다른 대출사 블록파이, 보이저디지털 등으로 유동성 경색 현상이 번지자 암호화폐거래소 FTX는 구제금융에 나섰다. 이를 두고 WSJ는 FTX의 개입이 예외적인 사례라며 “최후의 수단을 가진 대출자가 없을 때 유동성 부족은 엄청난 파괴력을 갖게 된다”고 경고했다.

스리애로즈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법원으로부터 최근 파산 선고를 받았다. 스리애로즈는 지난 4월만 해도 30억달러(약 3조9000억원)를 운용하며 ‘잘나가는’ 헤지펀드로 통했다. 하지만 투자한 한국산 암호화폐 루나 등의 가격이 급락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