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관련 상장사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안건들이 주주총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화석연료 가격이 뛰면서 서둘러 친환경 에너지로 사업 모델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잃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후변화 안건, 주총서 줄줄이 '퇴짜'
20일 투자전문매체 배런스에 따르면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업체의 올 2분기 주주총회에 상정된 기후 관련 안건은 50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지난달까지 과반수 지지를 얻은 안건은 10건에 불과하다. 지난해 2분기엔 26건이 상정돼 이 중 10건이 통과됐다. 상정 안건은 두 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통과 건수는 하나도 늘지 않은 것이다.

지난달 엑슨모빌 주주총회에선 파리기후협약에 근거해 탄소 배출량 목표를 맞추도록 한 안건이 상정됐지만 찬성률은 28%에 그쳤다. 지난해 6월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엔진넘버원의 제안으로 신재생에너지 분야 전문가 3명이 선임된 것과 비교하면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당시 엔진넘버원의 지분율은 0.02%에 불과했지만, 블랙록 등 주요 주주들이 엔진넘버원의 손을 들어줬다.

셰브런에서도 지난달 비슷한 기후 변화 관련 안건이 올라왔지만 찬성률은 33%에 그쳤다. 지난해 찬성표가 61% 나왔던 것과는 대조되는 결과다. 다른 에너지업체 상황도 비슷하다. 미국 정유업체인 필립스66(80%→36%), 미국 코노코필립스(58%→39%), 영국 BP(20%→15%)도 올해 들어 기후 관련 안건의 찬성률이 뚝 떨어졌다.

투자업계에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공급난이 심화하면서 기후 관련 안건에 대한 주주들의 찬성률이 급감했다고 설명한다. 유가가 오르는 국면에 서둘러 신재생에너지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꿀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지난달 대런 우즈 엑슨모빌 최고경영자(CEO)는 “우크라이나전쟁이 한창일 때 에너지 공급을 줄이는 것은 주주나 사회에 최선의 이익이 아닐 것”이라며 투자자들에게 기후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질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기후 관련 안건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식었다고 판단하기엔 이르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환경연구소 세레스는 “기업 이사회는 30%의 찬성표만 나오더라도 진지하게 기후 결의안을 고려한다”며 “첫 제안 후 안건이 수정되면서 상정 2~3년차에 더 높은 득표율을 얻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