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사들이 자사주 매입 공시를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최근 증시가 약세를 면치 못하자 적극적으로 주가 방어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악재가 겹친 증시에서 자사주 매입은 단기적으로 주가 하락을 막아주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일시적 주가 상승 후 다시 하락세를 이어가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에 기업의 실적과 성장성을 꼼꼼히 따져 종목을 고를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1주일간 20곳 자사주 취득 공시

쏟아지는 자사주 매입…추격 매수 괜찮을까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서만 39곳의 상장사가 자사주 취득 공시를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 7곳에 불과했던 자사주 공시가 다섯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코스피와 코스닥지수가 동반 급락한 이번주(13~17일)에만 20곳의 기업이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밝혔다. 모두 ‘주주가치 환원’을 이유로 들었다.

올해 2분기와 작년 같은 시기를 비교해도 자사주 매입에 나선 기업은 크게 늘어났다. 올해 4월부터 이날까지 자사주 취득 공시를 낸 기업은 총 126곳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63곳과 비교하면 약 두 배로 급증했다.

최근 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에서 대부분 종목이 급락하면서 기업들이 주가 방어를 위해 자사주 취득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분석이다. 올해 2분기 들어서만 코스피지수가 11%, 코스닥지수는 15% 가까이 떨어졌다.

증권가에선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공시가 어느 정도 주가를 지지해준다고 보고 있다. 자사주 매입이 기업의 적극적인 주가 부양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로 읽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그만큼 감소하기 때문에 나머지 주식의 주당 가치가 오르는 효과도 있다.

더존비즈온의 경우 지난 15일 500억원 규모의 자기 주식 취득 계획을 밝힌 다음날 주가가 5.72% 상승했다. 같은 날 자사주 매입 공시를 낸 위드텍, 아이에이도 다음날 주가가 각각 6.06%, 4.87% 올랐다. 16일 1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발표한 코엔텍 주가는 당일 3.47% 상승하며 장을 마감했다. 이튿날에도 0.5% 소폭 상승했다.

“자사주 매입 효과 제한적일 수도”

다만 자사주 매입 효과만을 기대하고 투자에 나서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실적이나 장기 전망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일시적 반등 후 다시 하락세에 접어드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메디톡스는 7일 자사주 취득 공시 발표 후 다음날 반등세를 보였지만, 이후 주가가 계속 빠졌다. 세아특수강도 9일 자사주 취득 공시 후 다음날인 10일 반짝 반등한 뒤 다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소각하지 않은 자사주는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내놓고 있다. 미국, 유럽과 달리 일부 국내 기업의 경우 자사주를 사들인 뒤 소각하지 않아 주가 부양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20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국내 상장사들의 자사주 취득 공시를 모두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상당수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하지 않고 되레 시장에 내다 판 것으로 나타났다. ‘임직원 보상액 마련’ 또는 ‘자금 조달’ 등의 이유를 댔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사주 매입은 주주 환원을 위한 수단으로 해석되지만, 이는 매입한 자사주가 처분되지 않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며 “재매도는 주주 환원 측면에서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