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가는 이재용, 반도체 EUV 장비부터 챙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오는 7일부터 18일까지 반도체 장비업체 ASML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네덜란드로 향한다. 반도체 미세공정에 반드시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공급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다.

삼성 측은 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 부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 합병 혐의 공판에서 재판부에 이렇게 통보했다. 이 부회장 측 대리인은 “7일부터 18일까지 이 부회장 출장 일정이 있어 다음 공판에 참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네덜란드 포토장비(EUV노광장비) 기기 협의차 간다는 건가”라고 묻자 이 부회장 측은 “그렇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공판 불출석을 허락했다.

업계에선 이 부회장이 ASML에 EUV 장비를 추가 공급해 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주문량이 급증하면서 EUV 장비를 확보하기 위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노광은 빛으로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공정을 뜻한다. 회로를 미세하게 새길수록 웨이퍼에서 생산할 수 있는 고성능 반도체칩 수가 많아진다. ASML이 공급하고 있는 EUV 장비는 세계에서 가장 얇게 회로를 새길 수 있다. 회로를 새기는 광원의 파장이 기존 장비와 비교해 14분의 1 수준이다.

EUV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는 전 세계에서 ASML이 유일하다. 대당 2000억~3000억원가량으로 고가인 데다 연간 생산량도 40여 대에 불과하다. 최근엔 EUV 장비에 필요한 렌즈를 독일 광학업체인 자이스가 공급망 문제로 생산하지 못해 EUV 장비 생산 속도도 같이 더뎌지고 있다. 이 때문에 각국 반도체 기업들이 반도체 쇼티지(수급 부족) 현상이 본격화된 2020년부터 ASML을 찾는 일이 더 잦아졌다. 이 부회장도 2020년 10월 반도체 장비 확보를 위해 ASML 본사를 방문했다.

이 부회장이 이번 출장을 떠나는 것은 선제적으로 EUV 장비를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파운드리 1위 업체인 대만 TSMC는 EUV 장비를 100대 넘게 확보하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15대에 불과하다. EUV 장비를 만드는 데만 2년가량 걸리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세워질 제2 파운드리에서 미세공정 생산라인을 만들기 위해선 올해 안에 장비 계약을 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삼성전자가 발표한 450조원 투자안에서 상당 부분이 반도체와 관련된 것인 만큼 장비 확보를 미리 해놔야 생산 설비 계획도 짤 수 있다”며 “TSMC와 경쟁하기 위해선 EUV 장비 확보전에서 먼저 승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