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콘텐츠株 쓸어담는 사우디 오일머니…왜?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머니가 일본 콘텐츠주를 쓸어담고 있다. 최근 1년 반 동안 사들인 일본 상장사 지분 가치만 8000억엔(약 8조원)이 넘는다. 콘텐츠 강국을 향한 사우디의 야심과 고유가·엔저 등의 시장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디 국부펀드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는 4100억엔을 들여 게임회사 닌텐도 지분을 5.01% 확보했다고 18일 공시했다. PIF는 닌텐도의 3대 주주가 됐다.

PIF는 2020년 게임사 스퀘어에닉스 지분 9.59%를, 올해 넥슨 지분 9.14%를 사들이기도 했다. 다른 게임주인 캡콤(지분율 6.09%)과 코에이테크모(5.03%), 애니메이션·영화제작사 토에이(5.0%) 지분도 매수했다. 18일 종가 기준으로 PIF가 보유한 일본 상장사 6곳의 지분 가치만 8143억엔에 이른다.

PIF는 일본 시장에서 콘텐츠주를 매수하는 이유를 밝힌 적이 없다. 증권가에서는 석유 의존도를 줄이려는 사우디가 다음 먹거리로 콘텐츠를 점찍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사우디가 제조업으로 승부를 보기엔 동남아시아처럼 노동력이 싼 국가도 아니고 이제 와서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며 “콘텐츠산업은 설비투자가 중요한 산업이 아닌 데다 소수의 훌륭한 인재들이 큰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닌텐도의 ‘슈퍼마리오’, 스퀘어에닉스의 ‘파이널판타지’, 토에이의 ‘드래곤볼’ ‘세일러문’ 등 일본 콘텐츠회사들은 강력한 지식재산권(IP)을 갖고 있다.

일본 콘텐츠주는 글로벌 콘텐츠주에 비해 덩치도 크지 않다. 일본 게임사 중 가장 큰 닌텐도의 시총은 7조7000억엔(약 77조원)으로 미국 액티비전블리자드(78조원)와 비슷하지만, 스퀘어에닉스(7609억엔)와 캡콤(9820억엔) 등은 이에 비해 훨씬 규모가 작다.

일본은행(BOJ)이 주요국 중앙은행과 다르게 나 홀로 통화 완화 정책을 이어가면서 엔화는 달러당 130엔을 넘어섰다. 엔화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것이다. 사우디로서는 싼값에 일본 기업을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후지와라 나오키 신킨애셋매니지먼트 운용부장은 “해외 기관투자자들은 일본 기업이 굉장히 저렴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펀드 자금도 넘친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전 세계로부터 돈을 끌어모으고 있다. 시장에선 PIF가 더욱 적극적으로 일본 콘텐츠주를 매수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