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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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과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자에게 적용하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가 하반기부터 시행된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직접 운용할 수 있는 퇴직연금이 운용 지시 없이 방치되고 있으면 가입자가 사전에 지정한 방법으로 운용되도록 하는 제도다.

디폴트옵션은 미국, 영국, 호주 등 영미권 국가가 선제 도입해 퇴직연금의 장기 운용성과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도 자산운용 활성화를 통해 퇴직연금자산의 고질적인 문제인 낮은 수익률을 끌어올리고자 도입을 결정했다.

○퇴직연금 운용의 현상유지 편향

현상유지 편향이란 인간이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변화를 위험으로 인식해 이를 회피하려는 경향이다. 이는 미래의 장기적 이익보다 현재의 가시적 손실 회피를 선호하는 성향과 결부돼 보수적인 투자행위를 유발한다.
'디폴트옵션' 날개 다는 퇴직연금…멀리 보고 글로벌 자산배분을
금융감독원의 과거 조사자료(퇴직연금시장 관행 혁신방안, 2018년 7월 17일)에 따르면 국내 DC형 퇴직연금 가입자 중 8.6%만이 운용 지시 변경 경험이 있었다. DC형 퇴직연금의 정기예금 등 원리금보장상품 운용 비중은 2021년 말 79%에 이르는데, 이는 운용 방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국내 DC형 퇴직연금의 최근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2.7%로 미국(8.6%), 호주(7.7%) 등과 비교할 때 극히 저조하다. 이로 인해 연금자산의 성장 지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경제환경 변화에 따른 자산운용 전략 변경이 이뤄지지 않아 연금자산이 원리금보장상품의 저수익 기조에 장기간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호주의 퇴직연금 가입자는 자산의 90% 이상을 투자형 상품에 투입하고 있다는 점과 대비된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퇴직연금 운용을 방치하게 되는 심리적 원인에 초점을 둬 착안됐다. 즉 현상유지편향과 같은 비논리적 선호체계를 역이용해 사전에 효율적으로 설정된 운용방법을 퇴직연금 가입자가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연금자산의 보수적 운용 및 방치를 미리 차단하는 것이다.

○국내외 골고루 자산 배분 필요

DC형 퇴직연금과 IRP의 최근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모두 2%대로 큰 차이가 없으며, 오히려 투자상품 운용 비중이 더 높은 IRP의 수익률이 다소 낮은 경향마저 있다. 이는 투자자산이 국내에 치중되는 등 효율적인 배분이 이뤄지지 않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투자 비중의 단순한 확대보다 중요한 것은 자산 배분과 장기 운용에 유용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일이다. 미국의 대표적 DC형 퇴직연금제도인 401k는 2006년 적격 디폴트상품체계로 QDIA가 도입된 이후 주식 직접투자 비중이 줄었다. 대신 타깃데이트펀드(TDF)와 같은 장기 자동자산배분형 펀드를 중심으로 한 간접투자 비중이 늘어났다. 호주의 퇴직연금 디폴트상품체계인 마이슈퍼는 해외주식 및 채권, 대체투자(부동산, 인프라, 헤지펀드 등) 등의 글로벌 분산을 활용한 자산배분을 장기적 관점으로 시행하고 있다.

하반기 국내에 도입될 디폴트옵션의 적격상품군에는 TDF, 밸런스펀드, 인프라(SOC)펀드 등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으로 자산을 배분하거나 주기적으로 투자 대상을 조정하는 상품이다. 디폴트옵션으로 단일 상품이나 단일 포트폴리오를 선택할 경우 고려해 볼 만하다.

박영호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