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98%’. 지난달 27일 장 마감 후 1분기 실적을 발표한 텔라닥 주가의 하루 낙폭이다. 미국 증시에서 기술주 수난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실적이 뒷받침되는 기술주는 상대적으로 선방하는 가운데 ‘적자 기술주’에 대해선 가혹한 평가가 내려지는 분위기다. 몇몇 기술주는 주가가 코로나19 이전 수준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금리 상승기에 기술주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기술주는 주가가 많이 빠져도 여전히 위험하다는 분석이다. 반면 ‘똘똘한’ 빅테크 기업 가운데 낙폭이 큰 종목은 저가 매수 관점으로 접근할 만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美 기술주 본격 '옥석가리기'…"실적 탄탄한 빅테크 담아라"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ARKK

지난달 29일 아크인베스트의 대표 상장지수펀드(ETF)인 ‘아크 이노베이션 ETF(티커명 ARKK)’는 3.56% 하락한 47.13달러에 마감했다. 현 주가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50.05달러)보다 낮다. 작년 2월 12일(156.58달러)과 비교하면 69.90% 급락했다.

ARKK는 파괴적 혁신 기업에 투자해 2020년 143%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ARKK가 담고 있는 줌비디오커뮤니케이션, 텔라닥 등은 코로나19 수혜주로 기대를 모으며 한때 주가가 2019년 말 대비 8배, 3배 넘게 급등했다.

이들 종목은 대부분 2020년 말~2021년 초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올 들어선 하락 폭이 커지면서 주가가 고점 대비 5분의 1 토막 났다. ARKK의 보유 비중 상위 2~4위 종목인 줌비디오커뮤니케이션(-83.09%) 텔라닥(-89.04%) 로쿠(-81.06%)는 전고점 대비 80% 넘게 빠졌다.

투자자에게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빅테크 기업도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넷플릭스는 올 1분기 가입자 수가 전분기 대비 20만 명 감소했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에 35.12% 급락했다. 미국 증시 시가총액 3위 기업인 아마존은 지난 1분기 7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힌 뒤 14.05% 빠졌다.

금리 상승은 적자 기술주에 ‘독’

최근 주가가 급락하는 기술주에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1분기 저조한 실적과 목표치(가이던스)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혁신 기업으로 주목받았지만 성장성이 둔화하면서 매력을 잃고 있다는 분석이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금리가 상승하면 미래 가치에 대한 할인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기술주에 가혹한 환경이 된다”며 “성장주라도 2~3년 뒤 제대로 이익을 내지 못하면 지금 같은 시장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전보다 주가가 빠졌지만 저가 매수를 노리기엔 위험이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적을 통해 성장성을 다시 입증하지 않는 한 투자심리가 회복되긴 어렵다는 설명이다. 장효선 삼성증권 글로벌주식팀장은 “팬데믹에 기댄 단일 사업모델만으로는 버티기 쉽지 않다”며 “ARKK가 담고 있는 기술주는 대부분 여전히 적자 상태라 밸류에이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지금 같은 금리 상황에서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낙폭 과대 빅테크 주목

증권가에서는 실적이 상대적으로 탄탄하면서도 주가 낙폭이 큰 기업을 눈여겨볼 만하다고 조언한다. 허재환 팀장은 “비즈니스 모델이 단순하고 어느 정도 성숙기에 접어든 성장주는 반등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봐야 한다”면서도 “반면 빅테크 기업은 비즈니스 모델이 단순하지 않고 다양한 사업을 하기 때문에 그중 하나라도 성공했을 때 실적과 주가가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대표적 기업이 메타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세 가지 주요 투자 방향을 제시했다. 메타의 숏폼 동영상 릴스와 광고, 그리고 메타버스다.

주가가 크게 빠지면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도 높아졌다. 메타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16.7배다. 네이버(29.0배), 카카오(45.5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정호윤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메타가 지난 1분기 실적 발표 후 급등한 근본적인 이유는 밸류에이션이 역사적 저점 수준까지 하락했기 때문”이라며 “금리 상승과 성장 둔화 우려 등이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밸류에이션 매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중국의 록다운(봉쇄) 조치로 수요 둔화 우려가 불거지며 주가가 한 달 새 32.03% 하락했다. 엔비디아의 12개월 선행 PER은 32.9배로 지난해 60배 수준과 비교할 때 크게 낮아졌다. 장효선 팀장은 “중국이 방역 조치 완화를 시사하고 있어 록다운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던 엔비디아의 반등을 기대할 만하다”고 했다.

기술주 가운데 성장성이 높은 기업도 눈여겨볼 만하다는 조언이다. 사이버보안이 대표적이다. 사이버보안 업체는 메타버스와 클라우드의 인프라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성장성이 높다. 미국의 대표 사이버보안 ETF인 ‘퍼스트트러스트 나스닥 사이버보안 ETF(CIBR)’는 연초에 비해 9.83% 하락하면서 나스닥지수(-22.09%) 대비 선방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