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가 주가지수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뉴스1
투자자가 주가지수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뉴스1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의 은어 중에는 '설거지 당했다'라는 말이 있다. 흔히 세력들이 짜놓은 작전(주가 조작)에서 자신도 모르게 손실을 떠안는 행위를 의미한다. 선수라고 불리는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설거지'는 작전 주식의 마지막 불꽃이라고도 말한다. 이들은 개미들에게 손실을 떠넘기면서 큰 수익을 챙겨간다.

과거에는 몇몇 종목들에만 해당됐던 설거지가 최근 주식시장에는 '설거지 늪에 빠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개인투자자들은 이성적인 판단은 뒤로 미룬 채 '묻지마 투자'를 하는 종목들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문제 있는 종목인 줄 알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면 '설거지'에 자진해서 들어가고 있다. 선수가 짜놓은 판이라고 하더라도 수익률에 보탬이 된다면 구정물에 자진입수하고 있다는 얘기다. 주식시장이 거대한 투기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단면인 셈이다.

이성 잃은 주식시장…쌍용차 인수전 살펴보니

단적인 예로 쌍용차 인수전을 꼽을 수 있다. 쌍용차는 2017년 1분기부터 지난해 4분기까지 16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현재는 완전자본잠식으로 상장폐지 가능성이 있다. 수년간 적자가 누적돼 인수한다고 해도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한다. 향후 전기차 개발 등에 추가로 투자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시장에선 최소 1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쌍용차 인수 후보로 거론된 기업들의 주가가 연일 널뛰기를 거듭하고 있다. 우선 에디슨모터스를 둘러싼 잡음이 최근 대표적이다. 에디슨모터스의 자금 조달 창구였던 에디슨EV가 대주주의 주가조작, 먹튀 논란 등에 휩싸이면서다.
"설거지 당하는 건 나였다"…알면서도 작전주에 몰빵, 왜? [류은혁의 기업분석실]
지난해 에디슨모터스는 쌍용차 인수를 위해 코스닥 상장사 에디슨EV(옛 쎄미시스코)를 인수했다. 지난해 5월초 6000원대이던 주가는 한달 만에 4만원대로 치솟았다. 7배 넘게 폭등한 것이다. 이어 무상증자, 쌍용차 인수합병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등 연이은 호재에 힘입어 같은해 11월에는 장중 8만240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주주 먹튀 논란이 불거졌다는 점이다. 에디슨모터스는 에디슨EV 인수 당시 강영권 에디슨모터스 대표를 비롯해 지인 등으로 이뤄진 디엠에이치, 에스엘에이치, 메리골드투자조합, 스타라이트, 아임홀딩스, 노마드아이비 등 투자조합을 통해 인수했는데 이들 조합이 주가가 급등하자 지분을 대부분 처분한 것이다.

이 기간 각 투자조합의 지분율은 5% 미만으로 공시 의무 적용을 받지 않아 투자자들은 이 사실을 알 수 없었다. 현재 에디슨EV는 쌍용차 인수 무산과 함께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상황이다. 당연히 주식거래도 정지됐다. 현 주가 1만1600원 기준 소액주주가 들고 있는 주식가치는 2693억원에 이른다. 대박을 노리던 개미들은 혹여나 에디슨EV가 상폐될까 불안에 떨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 사태를 계기로 투자자들이 '반면교사'를 삼을 것으로 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에디슨EV의 인수가 무산되고, 또 다른 업체들이 쌍용차 인수전에 뛰어든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개인들은 여기저기 몰려들고 있다. 특정 업체들이 쌍용차 인수를 내비치면 주가가 급등하고 개인 투자자들이 상승하는 종목에 올라타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이 같은 상황이 이례적이라고 지적한다. 기존 인수·합병(M&A)를 둘러싼 공식과 정반대 양상이기 때문이다. 통상 작은 기업이 규모가 큰 기업을 인수할 경우 자금 조달 문제가 불거지며 오히려 주가에 악재로 작용한다. 게다가 쌍용차는 당장이라도 파산을 신청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M&A 관련 회사로 언급되면 리스크를 짊어지는 셈이니 주가가 하락하는 게 정상이라는 얘기다.

일부 전문가들은 시장이 이성을 잃었다고도 한다. 특히 개미들의 탐욕을 노린 전략이 시장에서 먹혀들어간다는 지적도 나온다. 쌍용차 인수전이 투기 테마로 전락해 투자자들이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제발로 호랑이굴에"…탐욕에 눈 먼 개미들

세력들의 작전 판에서 개미들의 승률은 얼마나 될까. 세력들은 개미들을 현혹하기 위해선 주가 띄우기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최근 주식시장의 개미들의 경우 '워비곤 호수 효과'(Lake Wobegon Effect)에 빠져 탐욕에 눈이 먼 상태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과신효과라고도 불리는 이 효과는 자신이 평균보다 더 낫다고 믿는 일반적인 오류를 말한다. 세력이 띄우는 종목인 줄 뻔히 알면서도 '한 번 뜨면 상한가가 몇 번 가고 나는 잘 빠져나오면 된다'고 생각에 근거하는 것이다. 성사가 어려운 딜이나 문제의 소지가 있는 계약인데도, 개미들이 작전주를 사는 이유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전문가들은 세력들이 짠 작전판에서 개미들이 수익을 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력들의 주가 띄우기 과정은 간단하다"고 귀띔했다. 그들이 말하는 과정은 M&A·신사업 등 호재성 재료 준비→불법적으로 구한 차명 증권계좌 준비 → 차명계좌 나눠서 거래 →개인투자자들에게 전파 등의 순서다.

이 과정에서 차명 증권계좌의 경우 최소 5만~15만원 사이에 거래된다고 한다. 세력은 지역별로 움직인다고. 차명계좌를 나눠서 지방에서 주식을 팔아치우면 서울 등 수도권에서 매수하는 작전을 세운다고 한다. 당일 목표 수익률도 정해놓고 움직이기 때문에, 눈에 띄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검찰도 이같은 수법을 적발하는데 시간이 꽤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일이 계좌를 추적해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초기 작전주에서 수익을 낸 개미도 결국 다시 현혹되서 작전주에 뛰어들게 된다"며 "초기 투자금이 100만원이였다면, 이번에는 1000만원을 들고 뛰어드는 경우도 있다"며 도박판이나 다름없다고 비유했다. 그러면서 "세력들은 개미들이 현혹할 수 있는 다양한 수법을 가지고 있다"며 "목표 수익률에 도달할 경우 주식을 내다파는 비중을 높여, 개미들에게 물량을 떠넘기게 되고, 개미는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개미들은 스스로 주식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시장이 이성을 잃었다고 투자자 본인도 정신 줄을 놓아버리면 안된다. 제 발로 호랑이 굴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 피해서 돌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 개미들이 호랑이와 같은 '작전 세력'을 이기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작전 세력은 결국 나만 잘 빠져나가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개미만을 노리고 있다.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