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강도 제재로 첨단 반도체 구매가 막힌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매출 성장세가 19년 만에 처음으로 꺾였다.

29일 경제매체 차이신 등에 따르면 화웨이는 전날 선전 본사에서 연 실적발표회에서 2021년 매출이 6368억위안(약 122조원)으로 전년 대비 28.6%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화웨이의 연간 매출이 감소한 것은 3세대(3G) 통신 투자 실패를 경험한 2002년 이후 처음이다.

미국의 제재로 핵심 칩 조달이 막힌 소비자부문이 특히 부진했다. 스마트폰, PC 등으로 구성된 소비자부문의 매출은 2434억위안으로 49.6% 급감했다. 통신장비부문은 7% 감소한 2814억위안, 클라우드 등 기업부문은 2.1% 늘어난 1024억위안으로 집계됐다. 이로써 화웨이의 매출 기여도가 가장 높은 사업부는 기존 소비자부문에서 다시 통신장비부문으로 바뀌었다.

화웨이는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직접 설계해 외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에 생산을 맡기고 있다. 최고 사양 AP는 대만 TSMC로부터 공급받아왔다. 그러나 미국이 화웨이에 미국의 기술이나 제품을 활용해 생산한 반도체를 판매하려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조치하면서 첨단 반도체 공급이 중단됐다. 2020년 3분기까지 중국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던 화웨이의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미국의 제재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4분기부터 5위로 떨어졌다.

화웨이는 이에 2020년 11월 중저가 스마트폰 브랜드 아너를 분사해 선전시정부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지난해에는 서버 사업도 중국 국유기업 컨소시엄에 양도했다. 이런 매각 대금 중 일부인 574억위안이 지난해에 들어오면서 화웨이의 순이익은 전년 대비 75.9% 급증한 1137억위안을 나타냈다. 매각 대금을 뺀 순이익은 563억위안으로 2020년의 646억위안에 비해 12% 줄어든다.

미국의 제재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통신장비에도 적용된다. 통신장비부문의 타격이 비교적 적은 것은 중국 정부가 5세대(5G) 통신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화웨이 제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덕분으로 분석된다.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최고재무책임자)은 미국의 제재, 코로나19, 중국 5G망 건설 마무리 등을 실적에 영향을 준 요소들로 꼽았다. 통신장비부문의 매출마저 앞으로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화웨이는 클라우드, 스마트카 등 미국의 제재 영향이 적은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화웨이의 중국 클라우드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4분기 기준 18%로 알리바바(37%)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화웨이는 2017년 클라우드 사업을 시작했으며 3년 만인 2020년 텐센트와 바이두를 제치고 2위에 올라섰다.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클라우드 사업자를 화웨이로 대거 교체하는 등 정부의 지원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의 장녀인 멍 부회장은 지난해 9월 캐나다 가택연금에서 3년여 만에 풀려났으며 이날 4년 만에 공식 석상에 등장했다. 그는 "화웨이의 사업 규모는 작아졌지만, 수익력과 현금 확보 능력은 더욱 강해졌다"며 "회사의 불확실성 대처 능력은 부단히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멍 부회장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캐나다에서 체포됐으며 지난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직전에 풀려났다. 중국에선 미국과의 기술 패권 전쟁을 대표하는 잔 다르크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 덕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화웨이의 최고경영자(CEO)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