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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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최고의 금융신상품.’ 1993년 미국 시장에 첫선을 보인 상장지수펀드(ETF)가 15년 만에 1000배 성장(순자산 기준)을 이뤄내자 월스트리트 곳곳에선 찬사가 쏟아졌다. 펀드와 같은 분산투자 효과를 누리면서 운용보수가 낮고, 주식처럼 거래가 편리하다는 장점 덕에 ‘무결점 투자상품’으로 평가받았다. 2002년 한국 시장에 상륙한 ETF가 국내 도입 20년 만에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지난해 국내 ETF 시장이 전 세계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가운데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유가증권시장 기준)보다 ETF를 선호하는 역전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전 세계 성장률 1위 한국

'투자 수익률·다양성·편리함' 3박자…20년 새 200배 커진 ETF
20일 글로벌 ETF 리서치기관 ETFGI에 따르면 작년 글로벌 ETF 시장 순자산 증가율은 29.5%로 집계됐다. 국내 ETF 시장 성장률은 42.1%로 세계 평균을 크게 웃돈다. ETF가 태동한 캐나다(35.1%), ETF 최대 시장 미국(33.1%)마저 제쳤다. 일본(1.3%)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증가율(28.3%)도 압도하고 있다.

2002년 국내 자본시장에 처음 도입된 ETF는 오랜 무관심에서 벗어나 최근 2~3년 새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 6개월간(18일 기준) 개인투자자의 ETF 순매수 규모가 유가증권시장 주식 순매수 규모를 뛰어넘었을 정도다. 작년 하반기부터 상승세가 꺾인 국내 증시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주식보다 ETF에 더욱 주목한 셈이다.

출범 첫해 3444억원에 불과했던 ETF 순자산 규모는 현재 71조원으로 증가했다. 20년간 성장률은 200배에 달한다. 국내 ETF 시장은 도입 10주년을 맞은 2012년이 돼서야 순자산 10조원 문턱을 넘어섰다. 5년 뒤인 2017년 30조원, 2019년 50조원까지 순자산 규모가 커졌다. 주춤하던 ETF 시장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변곡점을 맞았다. 코로나 폭락장 이후 주식시장에 뛰어든 개미(개인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투자에 눈을 뜨기 시작한 덕에 2021년 한 해에만 20조원 넘게 시장이 커졌다. 국내 시장에 상장된 ETF가 500개를 돌파한 시점도 이때다. 김정현 신한자산운용 ETF운용센터장은 “ETF 시장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투자의 대중화라는 패러다임 변화가 맞물려 있다”고 평가했다.

100조원 시장 넘본다

ETF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0년 캐나다였다. 3년 뒤 미국에서 ETF를 받아들였다. S&P500지수를 추종하는 ‘SPDR S&P500 ETF(티커명 SPY)’가 시작이었다. 국내에 ETF가 도입된 것은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02년이다. 삼성자산운용(당시 삼성투신운용)의 ‘KODEX200’을 비롯해 코스피200지수와 코스피50지수를 추종하는 ETF 4종이 상장했다.

처음부터 인기를 끈 것은 아니었다. 당시 ETF는 상장 전 공모청약을 했는데 KODEX200에 일반투자자가 청약한 금액은 11억원에 불과했다. 코스피200에 분산투자하기 위한 최소 금액인 10억원을 간신히 웃도는 수준이었다. ETF 개념이 생소한 데다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투자와 인덱스 펀드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탓이었다.

ETF 시장이 본격적으로 꽃피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장이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공모 펀드 투자자가 막대한 손실을 입자 투자자들이 실시간 거래가 가능한 ETF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가입과 해지가 쉽고 보수도 저렴하다는 점이 이들을 사로잡았다. 2009년과 2010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인버스 ETF와 레버리지 ETF가 출시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김남기 미래에셋자산운용 ETF운용부문 대표는 “2011년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과 2012년 유럽 재정위기로 변동성이 커지면서 레버리지와 인버스 ETF의 부흥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후 ETF 시장은 별다른 부침 없이 꾸준히 성장을 이어갔다. 스마트베타 ETF와 토털리턴(TR) ETF 등 다양한 ETF가 등장했다. 2020년 ETF가 대세 투자 수단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시장 수익률을 웃도는 ‘알파’를 원했던 개인 투자자들은 2차전지, 메타버스, 친환경 등 다양한 테마를 장착한 ETF에 열광했다. 펀드매니저 재량으로 추가 수익을 추구하는 액티브 ETF까지 가세하면서 시장은 더욱 커졌다.

전문가들은 국내 ETF 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는 “투자의 편리함부터 분산투자 효과까지 장점을 두루 갖춘 ETF 시장은 여전히 운용업계의 미래 먹거리”라며 “연금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을 시작한 만큼 ETF의 쓰임새가 다양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재원/서형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