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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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 주식에 투자했던 개미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의 수익률은 -98%까지 떨어졌습니다. 1억원을 넣은 투자자는 휴대폰 한대 값도 못 건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18일 KINDEX러시아MSCI(합성)ETF의 괴리율은 6256.11%를 기록했습니다. KINDEX러시아MSCI(합성)ETF의 주가가 실제 가치 대비 6256.11% 고평가됐다는 의미입니다. 이 ETF의 주가는 1만70원이지만 순자산 가치는 158.43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 5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스탈린 사망 69주년 추도식. 사진=타스
지난 5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스탈린 사망 69주년 추도식. 사진=타스
지난 7일 KINDEX러시아MSCI(합성)ETF는 1만70원에 거래가 정지됐습니다. 기초지수를 산출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러시아를 자사 지수에서 편출하고, 모든 지수 내 러시아 주식에 0.00001의 가격을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운용사인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이 ETF가 상장폐지될 수 있다고 공지했습니다. 개인들은 투자금 대부분을 날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지난 1월부터 거래정지 전까지 개인들은 KINDEX러시아MSCI(합성)ETF를 283억원어치 순매수했습니다.
사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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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투자자는 평단 3만2000원에 8000만원을 투자했습니다. 순자산 가치가 158.43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8000만원이었던 투자금액이 40만원으로 급감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억 단위로 투자한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돈을 건지려면 MSCI가 러시아를 다시 지수에 편입해야 합니다. 하지만 전쟁 전개 양상을 보면 돈을 회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러시아에서 8년을 거주하고 러시아를 전공한 기자가 전쟁 상황과 전망을 분석했습니다.

향후 시나리오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야 합니다. 서방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과 달리 푸틴은 국민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러시아 내 반전 여론이 있지만 힘을 얻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푸틴 지지율. 사진=브찌옴
푸틴 지지율. 사진=브찌옴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브찌옴(ВЦИОМ)이 지난 7~13일 1600명을 설문한 결과 79.6%가 푸틴을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전주 대비 2.2%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전쟁 직전인 지난달 20일 조사(지지율 67.2%)와 비교하면 12.4%포인트 올랐습니다.

서방의 조사(2월28일~3월1일)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의 58%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중 ‘적극 지지’ 의사를 밝힌 비중은 46%에 달했습니다. 반대하는 여론은 23%에 그쳤습니다.

러시아 국민이 푸틴을 지지하는 이유는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영토가 방대한 러시아는 독재자가 통치할 때만 강대국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나약한 지도자가 나오면 나라가 와해됐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러시아 국민은 위기의 순간마다 독재자를 선택해왔습니다.
아들을 죽인 후 오열하고 있는 이반 뇌제.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의 대표작.
아들을 죽인 후 오열하고 있는 이반 뇌제.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의 대표작.
러시아 영토를 시베리아까지 확장한 이반 4세(1530~1584년)는 아들을 살해하며 ‘이반 뇌제’로 불렸습니다. 러시아의 근대화를 주도한 표트르 대제(1672~1725년)는 늪지대에 수도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수만 명의 농노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소련을 초강대국 지위로 올려놓은 이오시프 스탈린은 직간접적으로 400만 명을 죽였습니다. 푸틴은 1991년 소련 붕괴 후 최빈국 전락했던 러시아의 혼란을 수습했습니다. 특히 서방에 대항하며 무너졌던 ‘자존심’을 살려준 것이 전폭적 지지로 연결됐습니다.

러시아 국민들은 자유를 통제받고, 배를 굶더라도 ‘강대국 시민’이 되길 원하는 민족입니다. 로만 젤리코프라는 이름의 러시아 시민은 유튜브를 통해 “우리는 아이폰, 청바지 등 서방 쓰레기는 다 필요 없다”며 “파시즘에 대항해 뭉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여론을 고려할 때 푸틴은 순순히 철수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체면뿐 아니라 국민의 자존심을 살려줄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전쟁을 시작해 경제가 어려워졌는데 약소국 하나 못이기고 철수까지 한다? 그러면 푸틴의 집권도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크라이나 내 친러시아 지역. 자료=one-europe
우크라이나 내 친러시아 지역. 자료=one-europe
푸틴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포기와 도네츠크·루한스크의 독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두 지역은 러시아어 인구가 대부분인 친러 지역입니다. 두 지역을 가져오면 푸틴은 ‘파시스트로부터 러시아 국민을 구했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자국을 침략한 러시아에게 영토를 내어줄 수 없습니다. 영토를 내어주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희대의 역적’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실제로 협상에서 우크라이나는 영토 문제와 관련해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양측의 입장이 타협점을 찾기 어렵다면 전쟁은 장기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전쟁이 고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러시아 경제지 코메르상트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점령지역에 방어선을 구축하며 진군 속도를 늦추고 있습니다.

전쟁이 지속된다면 서방은 대러 제재를 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MSCI도 러시아를 다시 편입할 수 없습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ETF의 순자산총액이 50억 원 미만이 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다음 반기(6개월) 말에도 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대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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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