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가 핵심 사업부를 자회사로 쪼갠 뒤 재상장하는 물적분할은 개인투자자에게 ‘공공의 적’으로 치부돼왔다. LG화학 SK케미칼 등 물적분할을 결정한 기업 주가가 급락하는 사례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대선을 사흘 앞둔 6일 정부는 물적분할에 대한 규제의 칼을 빼들었다. 금융위원회는 모자회사를 동시 상장하기 전 기업 스스로 모회사 주주보호 방안을 마련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추가 규제 조치도 시사했다. 이에 따라 카카오 이마트 CJ 등 자회사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던 기업의 일정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업계는 “물적분할 후 재상장은 지배주주의 경영권이 흔들리지 않으면서 성장산업에 대한 투자자금을 모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며 반발하고 있다.
배당 확대·자사주 매입 안하면 물적분할 후 상장 못할듯

정부, 물적분할 재상장에 제동

이날 금융위가 내놓은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가이드라인 개정안’의 핵심은 ‘물적분할 등 기업 소유 구조를 변경하고 싶다면 그 전에 모회사 주주와 충분한 의사소통을 한 뒤 적절한 주주 보호 방안에 합의하라’는 것이다. 금융위가 언급한 주주보호 정책은 △소액주주와 간담회 개최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절차 엄격화 △배당확대·자사주 매입 등이다. 주주 보호 정책이 없을 경우 그 이유도 설명해야 한다.

또한 금융위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 중 ‘주주와의 의사소통 관련’ 항목에 소액주주와의 소통 사항을 별도로 추가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업이 소액주주에게도 기업의 중요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 같은 주주보호 방안을 기재해야 하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의 마감 기한은 오는 5월 31일이다. 대상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 자산 규모 1조원 이상인 기업이다.

금융위는 조만간 법적 규제장치 도입도 예고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우선적으로 이 같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뒤 다음달 물적분할 후 재상장으로 인해 피해를 볼 수 있는 모회사 주주 권리를 보호하는 법적 근거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금융위는 기업 내부거래에 대한 정보 공개를 강화하겠다는 규제를 내놨다. 상장사들이 계열사와 내부거래를 하거나 경영진·지배주주와 자기거래를 하는 경우 그 ‘내용과 사유’를 적극적으로 보고서에 설명해야 한다.

뜨거운 감자, 물적분할

‘물적분할 후 재상장’은 지난해부터 증시의 가장 뜨거운 논란거리였다. 최근 2년간 증시에 엄청난 유동성이 흘러들어오면서 기업들은 잇따라 알짜 회사를 물적분할한 후 상장해 막대한 사업 자금을 빨아들였다. 그러나 알짜 회사가 빠져나간 모기업 주가가 급락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은 거세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앙꼬 없는 찐빵’에 투자한 꼴이 됐다는 것이다.

물적분할 후 재상장을 단행한 LG화학, SK케미칼의 주가는 지난해 고점 대비 각각 49%, 60% 하락한 상태다. 개인투자자 사이에 물적분할에 대한 공포감이 커지면서 분할 발표 당시 “자회사를 상장시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던 포스코 주가가 하락하기도 했다.

금융위가 추가적인 법적 규제를 예고하면서 업계는 적지 않게 당황하는 분위기다. 물적분할 후 재상장은 국내 법 테두리 안에서 최대주주의 지분율을 유지하면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전기차나 2차전지처럼 산업의 축을 바꿔놓는 성장산업이 등장하는 건 10~20년에 한 번 있는 일”이라며 “선제적으로 공격적인 투자자금을 투입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IPO 앞둔 상장사 초비상

올해 자회사 상장을 앞둔 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당장 3개월 안에 주주보호 방안을 마련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부 IPO 건은 일정이 연기될 것이란 전망이다. 올해 이마트(SSG닷컴), CJ(CJ올리브영) 등이 자회사 상장을 앞두고 있다.

금융당국은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공시 대상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2024년 자산 규모 5000억원 이상 상장사, 2026년에는 유가증권시장 전 상장사에 기업지배구조서 공시 의무가 부과될 전망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2026년 733개의 상장사가 기업지배구조서를 제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 물적분할

특정 사업부를 신설회사로 만들어 이에 대한 지분을 모회사가 100% 소유하는 분할 방식. 물적분할 후 재상장 시 모회사 주주에게는 신설 법인 주식이 주어지지 않는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