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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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내 주요 상장사에 기업 승계방안을 밝히라고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기업 승계 방안은 경영전략상 대외비 성격이 강한 데다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사안이어서 선진국에서도 정부가 공개를 요구한 전례가 없다.

6일 금융위원회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해 “최고경영자(CEO) 승계방안의 주요 내용을 명확히 기재하는 경우에만 원칙을 준수한 것으로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매년 5월 공시하는 기업지배구조서 ‘최고경영자 승계방안 마련 및 운영’ 평가란에 회사의 승계방안 현황을 구체적으로 적으라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회사가 경영자를 양성하기 위해 후보군을 어떻게 선정하고, 교육과 평가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등을 상세하게 적어 기업투명성을 제고하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기입해야 하는 주요 내용에는 승계 방안의 수립 및 운영주체, 후보자 선정·관리·교육 현황 등의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그동안 상장사들은 상법과 정관상 대표이사 선임 절차만 나열하는 방식으로 준수 여부를 밝혀왔다. 승계방안은 기업 기밀인 경우가 많고, 승계계획을 마련하지 않은 곳도 다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는 5월부터 기존 관행처럼 내용을 기입하는 상장사는 이 가이드라인을 미준수한 것으로 간주된다.

금융위는 ‘G20·OECD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참고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는 입장이다. 선진국도 기업들에 같은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G20·OECD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 원문에는 관련 조항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G20·OECD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은 “이사회가 승계 절차를 감독할 의무만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기업모범규준을 한국 실정에 맞게 해석하다 보니 이런 규정이 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가이드라인의 기초가 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모범규준에서는 “최고경영자 경영승계 내부 규정, 후보군 관리 및 추천에 관한 사항 등 주요 사항을 정기적으로 공시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기업들은 정부와 외국계 투자자가 기업 경영진 선출에 개입할 근거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번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한국거래소는 “가이드라인 개정은 기업 부담을 새로 늘린 것이 아니며, 기존부터 있었던 기업 승계 방안 원칙의 판단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한 것”이라며 “기업이 승계 방안을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있으면 적으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