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투자 트렌드
EU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지난 2월 22일 러시아 제재에 대한 만장일치 합의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EU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지난 2월 22일 러시아 제재에 대한 만장일치 합의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여러 악재가 덮친 글로벌 금융시장이 혼돈에 빠졌다. 그간 고평가 논란에 휩싸였던 성장주는 일제히 하락한 반면, 커지는 인플레이션 우려에 이를 방어할 수 있는 관련주는 모처럼 웃었다. 업종, 테마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온 투자처가 있다. 전 세계적 탄소중립 물결에 올라탄 탄소배출권 상장지수펀드(ETF)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에 안전지대로 평가받아온 탄소배출권마저 휘청이고 있다. 녹색 원자재로 불리는 탄소배출권에 지금 투자해도 되는 걸까.

흔들리는 녹색 원자재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EU 탄소배출권 선물(ICE EUA) 가격은 1년간 87.21% 급등했다. 탄소배출권은 기업들이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각종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다. 할당량 이상 탄소를 배출하려는 기업들은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일반 가정집에서 버리는 쓰레기 용량만큼 종량제 봉투를 구입하는 구조와 비슷하다.

과거엔 탄소배출권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기업의 부담이 갑작스럽게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적 탄소중립 흐름과 함께 각국 정부가 이를 법으로 규제하면서 탄소배출권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전문가들은 “탄소배출권도 원자재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며 “아직까지 신재생에너지 인프라가 제대로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올해 제조업 경기(탄소 수요)가 빠르게 회복된다면, 공급이 비탄력적 탄소배출권 시장의 가격은 우상향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실제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2030년 탄소배출 허용량은 연간 총 3억2000만 톤으로, 현재 대비 2억6900만 톤 줄어들 것으로 알려졌다.

탄소배출권이 우상향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관련 상품이 쏟아졌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9월 말 동시 상장한 ‘SOL 유럽탄소배출권선물 S&P(H)’, ‘KODEX 유럽탄소배출권선물 ICE(H)’, ‘SOL 글로벌탄소배출권 IHS(합성)’, ‘HANARO 글로벌탄소배출권선물 ICE(합성)’(17.83%)가 대표적이다. 탄소배출권 ETF는 유럽 또는 글로벌 탄소배출권 선물시장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SOL 유럽탄소배출권선물 S&P와 KODEX 유럽탄소배출권선물 ICE의 경우 세계 최대 탄소배출권 시장인 유럽 탄소배출권 선물에 집중 투자한다. HANARO 글로벌탄소배출권선물 ICE와 SOL 글로벌탄소배출권선물 IHS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 중국 등 전 세계 탄소배출권 시장에 투자하도록 만들어졌다.

롤러코스터 탄 탄소배출권 ETF…언제까지 달릴까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상승세가 이어졌다. SK증권은 “지난 수개월간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 EU의 지정학적 갈등은 유럽 지역의 천연가스 수급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며 “이는 유럽 곧 천연가스 재고가 2002년 이래 최저 수준까지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으며, 탄소배출권 가격 역시 이러한 리스크를 반영해 90유로 후반대까지 급등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9000원대에서 출발한 SOL 유럽탄소배출권선물 S&P가 2월 초 1만5300원까지 꾸준히 상승한 이유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에도 탄소배출권은 대안자산으로 떠올랐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주식과 채권이 각종 변동성으로 부진한 수익률을 기록하는 상황에서 대안상품은 양호한 성과를 기록하는 경우가 있다”며 “올해에는 원자재와 대안자산인 탄소배출권 선물이 금융시장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정학 위험으로 촉발된 원자재(천연가스)의 부족으로 화석연료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탄소배출권도 수요가 늘어 탄소배출권 가격의 상승 압박을 받으며 연초 이후 에너지 가격과 탄소배출권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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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향 기조 이어질 듯”

하지만 3월 들어 탄소배출권 ETF가 하루 사이 20%나 폭락하는 사례가 등장하자 투자자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장세에서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믿음을 주던 탄소배출권마저 휘청거리며 공포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3월 2일 장이 시작하자마자 SOL 유럽탄소배출권선물 S&P, KODEX 유럽탄소배출권선물 ICE, SOL 글로벌탄소배출권 IHS, HANARO 글로벌탄소배출권선물 ICE 등은 일제히 20%가량 급락했다. 전날 유럽 탄소배출권 선물가격이 추락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이정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탄소배출권의 경우 유럽에서 급등한 탄소배출권 가격 조정에 관한 논의가 나오면서 최근 하락세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2005년 톤당 8달러에 불과하던 탄소배출권 가격이 최근 100달러를 육박하는 수준에 이르자 유럽 현지에서 배출권 시장의 가격 안정화 조치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과거 배출권 가격이 부진을 면치 못하자 유럽연합(EU)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경매 예정이던 9억 톤 물량에 대해 연기 조치하는 시장안정화 조치(Market Stability Reserve, MSR)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독일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앞당기겠다고 발표한 것도 배출권에 영향을 미쳤다. 재생에너지 사용이 확대될 경우 탄소배출권이 필요한 석탄 발전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 경기가 충격받을 경우 탄소배출권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급락한 가격이 조정을 받은 것일 뿐 우상향 기조는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은기환 한화자산운용 매니저는 “최근 가파르게 탄소배출권 가격이 오른 것이 조정의 빌미가 됐다”면서도 “오는 2026년부터 탄소배출권 적용 범위가 항공, 해운 등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수요가 늘어나면서 탄소배출권 가격도 우상향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천연가스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탄소배출권 가격이 지지선을 두고 버텨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탄소배출권은 통상 천연가스 가격과 동행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실제 유럽 전력 회사들이 천연가스 부담이 높아질 경우 값싼 석탄을 활용하면서 탄소배출권 수요가 증가하는 흐름을 보이기도 했다.

박재원 한국경제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