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자은행(IB)업계 리더들은 지난해 자본시장 딜 중 ‘최악의 거래(worst deal)’로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한앤컴퍼니의 남양유업 인수와 카카오페이 기업공개(IPO) 등을 꼽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매체 마켓인사이트가 최근 국민연금기금 운용역을 비롯해 PEF 운용사 대표, IB 대표, 법무법인, 회계법인 대표 등 53명을 대상으로 답변을 모은 결과다.

‘한앤컴퍼니의 남양유업 인수’는 응답자의 22%(11명)가 최악의 거래로 꼽았다. 이들은 “매도인과 매수인 모두 명성에 중대한 흠집을 낸 거래”라며 “매수인 측이 매도자의 돌발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등 거래 관리가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이유를 댔다.

남양유업은 ‘대리점 강매 사건’ ‘창업자 외손주의 마약 사건’ ‘불가리스 과장광고 사건’ 등이 연달아 터졌다. 여론은 물론 실적도 악화하자 홍원식 회장은 회사 매각을 발표했고 한앤컴퍼니가 이를 사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거래 당일 홍 회장이 나오지 않고 거래를 무효화하면서 결국 법정싸움으로 확산됐고 아직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양쪽의 법률 자문은 김앤장이 맡았다.

최악의 거래 2위는 7명이 답한 ‘크래프톤의 IPO’였다. 지난해 IPO ‘최대어’로 공모 규모가 4조3098억원에 달했다. 통상 대규모 IPO는 IB업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데, 크래프톤 IPO는 예외였다. IB 리더들은 “회사 측이 다소 높은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을 적용했다”며 “실제로 상장 후 주가는 공모가(49만8000원)를 크게 밑돌고 있다”고 설명했다. 16일 이 회사 주가는 27만7500원으로 공모가 대비 44% 하락한 상태다.

삼척블루파워의 채권 발행, 카카오페이의 IPO, SK E&S 우선주 인수금융 등은 각각 3명이 최악의 딜로 꼽으며 공동 3위에 자리했다.

신용등급 ‘AA-’ 우량 회사채 등급을 받은 삼척블루파워는 지난해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을 목표로 당시 시장금리보다 훨씬 높은 연 3%대 이자지급을 제시하며 수요예측에 나섰는데, 1원어치도 팔리지 않았다. 석탄화력발전소라는 점이 문제였다. 발행 주관을 맡은 증권사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를 간과했다는 평가다. 결국 회사채는 이들 증권사가 떠안았다.

카카오페이의 IPO는 상장 후 대표와 임원 등 경영진이 주식을 모두 처분하며 ‘먹튀’ 논란에 휩싸인 점이 이유로 꼽혔다. 류영진 대표 등 카카오페이 경영진은 상장 한 달을 넘기기 전에 주가가 오르자 약 900억원어치의 보유 주식을 파는 ‘스톡옵션 잔치’를 벌였다. 이후 카카오는 그룹 차원에서 사과와 쇄신을 약속하는 등의 조치에 나서야 했다.

SK E&S 우선주 인수금융은 2조4000억원어치 우선주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우선주 투자자가 요구한 차입 조건 탓에 최악의 거래로 꼽혔다. 우선주를 담보로 10년 간 돈을 빌리면서 연 3.7% 이자만 주기로 했는데, 이후 시장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관행과 안 맞게 너무 낮은 이자에 돈을 빌려줬다”는 뒷말이 국내 금융회사들 사이에서 무성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IB 리더들은 지난해 ‘최고의 거래(best deal)’로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를 꼽았다. 한국 자본시장 역사상 최고 규모(90억달러)의 거래였고, 국가 경제에도 보탬이 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