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업계 ‘큰손’의 현금 비중이 1년9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방어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해 “운용 자산이 1조달러(약 1200조원) 이상인 펀드매니저의 현금 비중이 지난달 5%에서 이달 5.3%로 높아졌다”고 16일 보도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막 시작돼 투자 심리가 얼어붙었던 2020년 5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기조에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투자자가 현금 비중을 늘렸다는 분석이다. FT는 “투자자들이 Fed와 영국 중앙은행(BOE)의 강력한 긴축 드라이브가 경제 회복을 방해하고 주식과 같은 위험 자산에 부담을 주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골드만삭스는 “현금이 그 자체로 경쟁력 있는 자산이 됐다”며 회사채 보유량을 줄이고 현금 비중을 늘리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지난달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4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는데도 투자자는 뭉칫돈을 쌓아 두고 있다. UBS가 투자액 100만달러 이상의 고액 투자자를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인플레이션이 현금 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대답한 비율이 56%에 달했다. 그런데도 응답자의 61%가 지난달 현금 비중이 10% 이상이라고 답했다. 전달 대비 3%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투자자가 현금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현금 비중을 늘린 것이다.

다만 현금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투자자문사 쿠로스어소시에이츠의 탄크레디 코데 설립자는 “투자자가 현금 비중을 늘린 것은 최근 메타(옛 페이스북) 주가가 폭락하는 등 변동성이 커진 데다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며 “Fed의 기준금리 인상 경로가 뚜렷해지면 저평가된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 돈을 풀 것”이라고 내다봤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