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암호화폐,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비슷"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지원센터 전광판에 표시된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들 시세. 사진=뉴스1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지원센터 전광판에 표시된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들 시세. 사진=뉴스1

"코인 투자손실, 약자가 뒤집어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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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의 새로운 자산군', '금융의 미래', '중앙화된 기득권 체제에 대한 저항'…. 암호화폐 시장을 취재하다 보면 업계 관계자들에게 자주 듣게 되는 '가상자산 예찬론'이다. 심지어 "주식은 공매도가 있지만 코인은 공매도가 없어 훨씬 공정하다"고 말하는 투자자도 있다.

코인 시장에 뛰어든 투자자의 60% 이상을 20~30대가 차지하고 있다. 단돈 몇천원만 있어도 비트코인 투자를 시작할 수 있는 낮은 진입장벽도 암호화폐 시장의 특성이다.

그런데 미국의 대표 경제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이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봤다. 암호화폐의 높은 변동성과 위험이 '손실에 대비되지 않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불평등하게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2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암호화폐는 어떻게 새로운 서브프라임이 됐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코인 열풍을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비유했다. 그는 암호화폐에서 "2000년대 서브프라임 위기와 불편한 유사성을 보고 있다"고 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미국에서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을 상대로 판매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상품이다. 당시 주택시장의 초호황 속에 담보대출의 파생상품으로 돈을 벌려 했던 은행들은 저신용자에게 이 대출을 무차별적으로 팔았다. 그러나 주택시장 거품이 꺼지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무더기로 부실화했고, 세계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됐다.

크루그먼 교수는 오래 전부터 비트코인이 사기이자 거품이라고 비판해온 암호화폐 회의론자다. 코인을 다단계 사기인 '폰지'는 물론 '사이비 종교'에 비유한 적도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사진=한국경제 DB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사진=한국경제 DB

이날 기고문에서는 비트코인 가격 상승이 단순한 거품은 아닐 수 있다고 했다. 또 암호화폐 시장 규모가 작아 서브프라임처럼 전체 금융 시스템을 위협할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다만 "암호화폐의 위험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취약점에 잘 대처하지 못할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불평등하게 부과되고 있다는 증거가 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암호화폐가 폭락했지만 과거에도 그랬듯 어쩌면 회복해서 새로운 고점까지 상승할 수 있다"면서도 "지금 손실을 본 사람이 누구냐"라고 물었다.

크루그먼 교수는 "암호화폐 투자자는 주식과 같은 다른 위험자산 투자자와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며 시카고대 산하 내셔널오피니언리서치센터(NORC)의 지난해 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NORC에 따르면 미국 암호화폐 투자자의 44%는 백인이 아니고, 55%는 대학 학위 미소지자였다. 주식 투자자는 부유하고 대학 교육을 받은 백인들이 중심인 것과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평균 연령은 38세였으며 35%는 연간 가계소득 6만 달러(약 7200만 원) 미만이었다.

NORC는 이 점을 두고 "암호화폐가 좀 더 다양한 투자자들에게 투자 기회를 열고 있다"고 평가했지만, 크루그먼 교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비슷한 칭송을 받은 시절이 있었다"고 짚었다.

크루그먼 교수는 "투자자들은 판단을 내릴 대비가 잘된 사람이어야 하고, 손실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사람이어야 한다"며 "불행히도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그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암호화폐 시장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규제당국은 서브프라임 사태 때 저질렀던 것과 똑같은 실수를 했다"며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금융상품으로부터 대중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고, 많은 취약한 가정이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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