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직 부장검사가 본 중대재해법
오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인명 피해를 막으려는 법이다. 기업 활동으로 근로자가 다치든(중대산업재해), 시민이 다치거나(중대시민재해) 사망 등 중대 인명 피해(중대재해)가 나면 경영 책임자를 처벌한다. 형량은 무겁다. 사망 사고라면 1년 이상 징역, 10억원 이하 벌금이다. 기업도 가만두지 않는다. 50억원 이하 벌금을 내고, 최대 다섯 배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중대재해 발생을 이유로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필요한’ 관리를 ‘적절히’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관리를 잘하라는 것이어서,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 업무를 직접 할 필요는 없다. 목표와 방향을 정하고, 조직·인사·예산·업무를 주면서 지휘·감독하면 된다. 관리를 잘했다면 면책될 것이다.

합리적인 듯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필요한 관리를 적절히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첫 시행이어서 선례도 판례도 없다. 정부 해설서와 지침도 불분명하다. 경영 책임자 처벌 범위 등 핵심적인 부분에 대한 답이 없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안 하면 형사처벌한다. 사업 현장에서 ‘환장할 노릇’이라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안전 비용을 아끼는 탐욕 때문에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며 경영자를 몰아세운다. 물론 경영자 잘못도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사고는 근로자 등 당사자 과오가 결합돼 생긴다. 현장에 없는 경영 책임자가 현장 사고를 막는 것도 한계가 있다. 예컨대 서울 본사의 경영자가 최선을 다해도 제주 현장 근로자의 개인적·순간적인 착오나 실수로 발생하는 사고는 막을 수 없다. 이 때문에 현장 사고로 경영 책임자를 처벌한다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잘 납득되지 않고, 위헌 시비도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수사·처벌 대상을 현장 책임자까지로 한정하고, 경영 책임자는 책임질 만한 예외적 사정이 있을 때 수사하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경영 책임자까지 수사하는 게 통상이 될 전망이다. 현실과 균형에 맞는지, 불가능을 강제하는 것은 아닌지, 형사처벌이 적절한 방법인지 등 의문이 많다.

최근 2년간 산업안전법 전면 개정,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으로 처벌을 강화했지만, 지난 11일의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 등 인명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경영 책임자를 처벌한다고 해도 인명 피해는 계속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도는 좋지만 실효성은 의문이고, 반(反)기업 정서에 치우친 과잉 규제로서 기업가의 발목을 잡을까 우려된다. 기업가는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고, 세계 최빈국이던 대한민국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만든 주역이다. 우대하고 격려해 줘야지, 희생양으로 삼아 괴롭혀서는 안 된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기업가의 선택지는 △변호사에게 면책 방법을 물어보거나 △형사처벌을 전가할 총알받이 대표이사를 세우거나 △국내 활동을 줄이고 해외로 나가는 것 등 세 가지다. 국가의 선택지도 세 가지다. △중대재해처벌법을 폐지·개정하거나 △모호성을 해소하거나(예컨대 검찰, 고용노동부 등 범정부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해석 지침을 발표하거나 근로감독을 통해 사전 인증·계도) △법 시행을 유예하는 것이다.

최고경영자는 기업과 국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최고경영자 이슈인 중대재해처벌법은 파급력이 막대하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지를 택해야 할까. 냉철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실효성 없는 명분론에 얽매이지 말고 현실을 보자. 기업가는 전문가 자문 등으로 철저히 대비하고, 정부 당국과 사법기관은 현실성 있게 법을 적용하되, 과잉·모호한 부분은 추후 폐지·개정해야 할 것이다. 비록 좋은 의도라고 해도 현실성 없는 정책은 국민을 괴롭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