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모듈주인 LG이노텍은 올해 내내 ‘만년 저평가주’로 불렸다. 지난 2월 초부터 11월 초까지 9개월 동안 20만원 초반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카메라 모듈 시장 성장에 따라 재평가된 종목이지만 올해는 외면받았다. 그랬던 주가가 11월 초부터 반전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약 한 달간 40% 넘게 올랐다. 단기 호재에 기댄 상승이 아니었다. 증권업계에서는 시장이 요구하는 박스권 탈출 조건을 LG이노텍이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주력 제품의 경쟁력과 시장 지배력, 다양한 사업의 고른 성장, 단기 호재 등이 겹친 결과다.
LG이노텍이 보여준 '박스권 탈출의 조건'

1개월 새 40% 급등

LG이노텍은 13일 2.62% 오른 31만3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9일 21만3500원에서 약 한 달 동안 46.60% 올랐다. 본격적인 주가 재평가가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한 달간 기관이 1300억원어치 넘게 순매수하며 상승세를 이끌었다. 외국인도 300억원어치 넘게 샀다.

올해 내내 6~7배 수준에 머물었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1년 전 수준인 8배로 올랐다. 증권사들의 목표주가도 따라 올랐다. 1개월 전 29만5000원에서 35만4000원으로 급격히 상향 조정됐다. 이 기간 리포트를 낸 증권사 14곳 중 12곳이 목표주가를 올렸다.

그동안 주가가 부진했던 원인이 해소되고 있다는 평가다. 주가 부진은 LG이노텍의 주 고객사인 애플의 생산 차질 때문이었다. 아이폰13이 베트남 코로나19 확산과 중국 전력난 등으로 출하량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장기적으로는 카메라 모듈 시장의 고성장세가 점차 둔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따랐다.

박스권 탈출 비결은

애플발 악재는 경쟁력 덕에 호재로 바뀌었다. 그것도 애플에서 나왔다. 애플은 메타버스 시대를 맞아 가상현실(VR) 기기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VR 기기 내부에는 카메라 모듈이 장착된다. LG이노텍의 주요 제품인 3D 센싱모듈이나 반도체 기판 등의 수요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애플 호재가 떴다고 애플 관련주가 모두 오른 것은 아니다. 다른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얘기다. 사업부별 고른 성장세가 주가 재평가의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카메라 모듈을 담당하는 광학솔루션 부문은 올해 10조원, 내년에도 11조원 이상의 매출을 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전장부품과 반도체 기판 부문 매출이 올해 각각 1조3800억원, 1조5790억원에서 내년 1조6750억원, 1조7210억원으로 고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철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카메라 모듈에다 기판 성장성까지 더해지면서 실적 안정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특정 부문의 실적 부진에 따른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할인 리스크가 없다는 얘기다.

단기 실적 전망도 중요하다. 호재를 실적으로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LG이노텍은 4분기 매출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가 지난해 동기보다 27.4% 늘어난 4조8965억원이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28.1% 늘어난 4387억원으로 전망된다. 우려가 짙었던 내년도 실적 전망치도 급격히 개선됐다. 내년도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3개월 전 1조725억원에서 1조3008억원으로 급격히 상향 조정되면서 역성장 우려에서 벗어났다.

시장 지배력도 필요한 조건이다. 호재, 실적 등이 받쳐주더라도 시장 지배력이 흔들리면 밸류에이션은 오를 수 없다. LG이노텍과 국내 경쟁사인 삼성전기의 카메라 모듈은 글로벌 업체 가운데서 압도적인 기술을 인정받고 있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카메라 모듈의 조립 수율을 확보하기 위해선 차별화된 기술 경험이 필요하다”며 “확고한 입지를 생각하면 이제 연간 1조2000억원의 영업이익은 기본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판사업도 통신 기판 등의 기술 우위를 토대로 꾸준한 매출 성장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