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비전펀드 전략 급회전…'中 급감속·유럽 급가속'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그룹이 운용하는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VC) 비전펀드의 투자전략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 투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1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9월말 현재 비전펀드2호는 미국에 전체 투자금(투자집행 기준)의 42%인 137억달러(약 16조1934억원)를 투자했다. 유럽(중동·아프리카 포함) 지역 투자가 94억달러(28%)로 뒤를 이었다. 반면 중국 투자규모는 51억달러로 15%까지 줄었다.

비전펀드1,2호는 2017년과 2019년 1000억달러 규모로 출범했다. 지금까지 인공지능(AI) 관련 예비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달러를 넘는 비상장기업) 186곳에 투자했다.

비전펀드1호는 중국 투자비중이 절반에 가까웠다. 반면 유럽 기업 투자는 6건, 30억달러로 전체의 3%에 불과했다. 1호펀드에 비해 2호펀드의 유럽 지역 투자건수(41건)가 7배, 투자 규모는 3배 많다.

비전펀드가 미국과 중국에 집중됐던 투자대상을 다변화하는 것은 중국 시장에서의 손실이 확대되고 있어서다. 미중 무역마찰로 미국이 중국 기업을 견제하는데다, 중국 정부까지 자국 정보기술(IT) 대기업을 직접 규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미국 재무부는 비전펀드가 투자한 중국의 화상인식 기술개발사 센스타임스를 자국민의 주식투자 금지대상으로 지정했다. 센스타임스의 안면인식 기술이 신장위구르 소수민족 감시에 사용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오는 17일 홍콩증시에 상장할 예정인 센스타임스의 기업가치에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중국 정부의 IT 대기업 때리기가 계속되면서 소프트뱅크그룹의 주요 투자대상인 알리바바와 디디추싱의 기업가치도 급락했다. 이 때문에 지난달 소프트뱅크그룹이 1조엔 규모의 자사주 매입계획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 주가는 연중 최저치로 떨어졌다.

투자처를 다변화해 리스크를 분산해야 하는 상황에서 때마침 유럽 지역의 스타트업이 급성장하면서 비전펀드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영국의 디지털은행 조퍼, 스웨덴 후불결제업체 크라나 등이 최근 비전펀드 2호의 투자를 받았다.

얀니 피피리스 비전펀드 유럽 투자담당자는 "유럽의 기술 생태계가 매우 성숙해져 미국과 인도에 비해 우수한 기업을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에는 일본의 바이오 스타트업인 애큐리스파머에 68억엔을 투자했다. 비전펀드의 첫번째 일본 기업 투자다. 한국 기업 가운데는 쿠팡(전자상거래·3조3000억원)과 아이유노(번역 및 자막·1800억원), 뤼이드(AI 교육·2000억원), 야놀자(2조원) 등 4개 기업이 투자를 받았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