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쇄신 인사 배경

역대급 실적에 기존 ‘트로이카 체제’ 유지 관측됐지만
李부회장 “이대로는 위험”…美 출장 후 심경변화 감지
2017년 이후 가장 큰 인사…한발 빠르게 과감한 변화
삼성전자는 7일 한종희 세트(완제품)부문 부회장과 경계현 DS(반도체)부문 사장을 ‘투톱’으로 앞세우는 것을 골자로 한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사진=한경DB

삼성전자는 7일 한종희 세트(완제품)부문 부회장과 경계현 DS(반도체)부문 사장을 ‘투톱’으로 앞세우는 것을 골자로 한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사진=한경DB

반전의 연속이었다. 7일 발표된 삼성전자 2022년 사장단 정기 인사는 당초 예측과 딴판이었다. 애초 삼성 안팎에선 김기남 DS(반도체)부문 부회장, 김현석 CE(소비자가전)부문 사장, 고동진 IM(IT·모바일)부문 사장 등 대표이사 3명이 모두 유임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가석방 상태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한꺼번에 조직을 흔드는 게 부담스러울 것이란 분석이었다. 대규모 쇄신 인사는 향후 사면을 받고 법적 제약에서 벗어나 등기임원으로 되돌아간 뒤에야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이재용의 ‘뉴삼성’ 결심
이재용 "초격차만으론 안돼"…'대표이사 유임' 초안 완전히 뒤집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였다. 인사 시점이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2017년 이후 가장 큰 쇄신 인사가 나왔다. 삼성전자 완제품 사업의 양대 축인 CE와 IM부문을 통합하는 조직개편안도 함께 발표됐다.

경제계는 예상외의 대규모 인사와 조직개편을 이 부회장이 주도했다고 보고 있다. 코로나19, 공급망 붕괴 등으로 글로벌 산업지도가 급변하는 시점이란 점을 감안해 쇄신 인사와 조직개편 시점을 한 박자 앞당겼다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의 심경 변화는 지난달 미국 출장 때부터 감지됐다. 그는 지난달 21일과 22일 실리콘밸리에 있는 반도체와 세트(완제품) 연구소 DS미주총괄(DSA)과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를 방문해 “추격이나 뒤따라오는 기업과의 ‘격차 벌리기’만으론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의 상징과 같은 ‘초격차 전략’을 폐기하겠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지난달 24일엔 발언의 수위가 한층 더 높아졌다.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들,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니까 마음이 무겁다”는 것이 이 부회장의 귀국 일성이었다. 산업지도가 재편되는 시기를 맞아 주요 글로벌 기업이 새로운 비즈니스 시험에 나서는 것을 보고 강한 위기의식을 느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본격적인 내부 단속의 시작은 인사제도 개편이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직급별 승진 연한을 없애고 임원 직급을 2단계로 단순화해 나이, 입사연도와 관계없이 성과를 올린 젊은 인재를 임원으로 중용할 수 있게 했다. 이후 1주일간의 장고 끝에 전자 계열사 사장단 인사와 조직개편안이 추가됐다.

경제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올 연말을 쇄신을 위한 ‘골든 타임’으로 본 것 같다”며 “서둘러 변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위기감에 인사제도와 조직개편, 대규모 인적 쇄신을 서두른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인사의 데자뷔
이번 삼성전자 인사는 2017년 11월 2일 이뤄진 2018년도 인사와 비견된다. 당시에도 세 명의 대표이사가 모두 교체됐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이끌었던 권오현 부회장이 종합기술원 회장으로 승진하며 2선으로 물러났다. 가전 사업의 대부인 윤부근 사장은 CR(기업의 사회적 책임)담당 부회장, 스마트폰 사령관이었던 신종균 사장은 인재개발담당 부회장을 맡으며 현업을 떠났다.

2017년의 삼성은 총수 부재의 엄혹한 상황이었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됐던 이 부회장이 그해 2월 구속된 여파였다. 당시 삼성은 조직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고 대표이사 전원 교체라는 초강수를 뒀다. 권오현 부회장은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며 “회사가 최고 실적을 내고 있지만 이는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이라며 “미래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경제계에선 2017년과 올해가 적지 않은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 부회장이 가석방되기는 했지만 중장기 계획을 짜는 것이 불가능한 ‘시계제로’ 상황은 다를 게 없다. 코로나19 장기화, 반도체 패권전쟁, 공급망 대란 등의 여파다. 삼성전자가 올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내년 전망을 포기했다고 밝혔을 만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의 전직 최고경영자(CEO)들 사이에서 경영진이 타성에 젖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도 대규모 쇄신 인사가 이뤄진 배경 중 하나로 거론된다. 위험 부담이 큰 프로젝트에 도전하길 꺼리는 경영진이 적지 않다는 질타였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삼성의 인사는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봐야 한다”며 “금명간 발표될 임원 인사에서도 이 같은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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