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28일 하버드대에 다니던 한 학생이 여학생들의 사진을 두고 누가 더 매력적인지 투표하는 사이트를 열었다. '핫 오어 낫(Hot or not)'의 하버드대 버전인 '페이스매시'다. 개설 4시간 만에 450명이 방문했다. 사진 조회 건수는 2만2000건에 이른다.

며칠 후 위기가 찾아왔다. 여성단체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사이트는 학내 논쟁으로 번졌다. 사이트를 만든 학생은 정보보호법과 저작권법 위반, 사생활 침해 등으로 퇴학 위기에 몰렸다. 나중에 혐의를 벗고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지만 사이트는 폐쇄됐다. 2010년 10월 25일 이 사이트 도메인(페이스매시닷컴)은 3만201달러에 팔렸다. 매달 실 사용자만 29억명에 이르는 페이스북이 탄생하기 직전 마크 저커버그의 얘기다.

저커버그가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섰다. 이번엔 정치갈등 등 사회 문제를 돈벌이에 이용했다는 내용 등이 담긴 내부고발이 발목을 잡았다. 페이스매시를 내놓은지 정확히 18년 만인 지난달 28일 그는 새 브랜드를 발표했다. 그리스어로 '저 너머'라는 뜻을 가진 메타다. 18년 만에 상징적 브랜드인 '페이스'를 버리고 새 도약을 선언한 것이다.

'얼굴책' 페이스북으로 세계 1위 오른 저커버그

'페이스'는 저커버그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다. 페이스매시로 홍역을 치른 이듬해인 2004년 2월 4일 그는 하버드생의 사진과 정보를 제공하는 디렉토리 사이트를 열었다. 이름은 '더페이스북'. 말 그대로 '얼굴을 담은 책'을 디지털 세상에 론칭한 것이다.

사이트 개설 첫달 동안 하버드대 학생의 절반 이상이 서비스에 등록했다. 이후 스탠포드, 콜롬비아, 예일대로도 서비스를 확장했다. 점차 영역은 아이비리그, 보스턴 지역 대학 등으로 퍼졌고 미국과 캐나다 대부분 대학생으로 사용자는 점점 넓어졌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업에도 참여의 문을 열었다.

페이스북이 기업화된 것은 2004년 7월 29일부터다. 저커버그에게 경영 지원을 하던 숀 파커가 초대 사장에 올랐고 2005년 20만달러에 페이스북닷컴 도메인도 인수했다. 페이스북이 세계 최대 SNS로 올라서는 발판은 마련한 것은 2006년 9월 26일이다. 이메일 주소를 보유한 만 13세 이상 모든 사람들이 계정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페이스매시로 논란의 중심에 선 지 3년 만에 얻은 성과다.

페이스북의 브랜드 상징은 파란색이다. 이는 저커버그와도 관련이 있다. 저커버그는 적록색맹이다. 빨간색과 녹색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파란색은 그가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는 색상이다.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파란색은 나에게 가장 풍부한 색상"이라고 말했다.

'사회 갈등' 이용해 돈벌이 논란

세계 1위 SNS인 페이스북은 21세기를 대표하는 매체가 됐다. 인터넷을 통한 여론 참여 시대를 연 상징적인 브랜드다. 사용자가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 공급하는 '웹 2.0'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하지만 빛이 밝은 만큼 그늘도 강해졌다. 막대한 이용자 데이터를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는 내부고발이 잇따랐다. 인터넷 민주주의 시대에 큰 기여를 했던 페이스북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페이스북 사용자 수천만명의 정보가 유출돼 미 대선 캠페인,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에 악용됐다는 내부고발이 나왔다. 광고주들이 데이터 업체를 통해 사용자 개인 정보에 접근하고 이를 정치적인 용도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논란은 올해에도 이어졌다. 올해 5월까지 페이스북 상품 매니저로 근무했던 프랜시스 하우겐은 페이스북이 알고리즘을 통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조장해왔다고 폭로했다. 기업 내부에서도 이런 문제를 충분히 인지했지만 사용자 시간을 늘려 광고 수입을 높이기 위해 눈 감았다는 것이다.

미 주요 매체들은 '하우겐 파일'을 입수해 앞다퉈 보도했다. 국회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결국 저커버그는 변신을 택했다. 회사 이름을 '메타'로 바꾸기로 한 게 그 첫걸음이다. 브랜드를 바꿔 이미지 쇄신에 나선 것이다.

메타 변경 후에도 소비자 신뢰는 하락

'메타'로 리브랜딩에 나섰지만 소비자 반응은 좋지 않다. 패스트컴퍼니에 따르면 지난달 이후 페이스북의 브랜드 점수는 꾸준히 추락했다.

해리스브랜드플랫폼의 페이스북 브랜드 신뢰율은 9월 16%에서 10월 첫째주 5.8%까지 급락했다. 하우겐이 의회 등에서 페이스북의 문제를 고발하기 시작하던 때다. 인스타그램이 10대 소녀들의 우울감 등을 강화하는 도구지만 이를 알고도 방치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10월 후반기 들어 11%까지 반등했던 브랜드 신뢰지수는 '메타'라는 사명을 발표한 뒤 다시 6.2%로 하락했다. 리브랜딩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것이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질 아베리 선임 강사는 "바꾼 이름이 성공할지 여부는 기업이 기존 고객에게 변경 사유를 얼마나 잘 설득하는지에 달렸다"며 "불법적이거나 진실하지 않거나 잘못된 이유로 이름을 바꾸면 오히려 소비자와의 관계가 손상될 수 있다"고 했다.

기업의 본질을 바꾸지 않고 나쁜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이름만 바꾸면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아베리는 메타가 회사 이름이기 때문에 SNS 플랫폼인 '페이스북' 등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