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일 로스비보 대표 / 사진=서범세 기자
노승일 로스비보 대표 / 사진=서범세 기자
설립이 채 1년이 안 된 미국의 바이오벤처 로스비보 테라퓨틱스가 최근 잇따라 깜짝 소식을 전했다. 글로벌 제약사와 기술수출을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해 미국 일라이릴리,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와 기밀유지협약(CDA), 중국 통화동보제약과는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CDA란 물질 혹은 기술을 검토하며 알게 된 영업비밀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계약이다. 기술 협력을 결정하기 전에 이뤄지는 검증 절차다.

지난 15일 방한한 노승일 로스비보 대표(미국 네바다주립대 의대 부교수)를 만났다. 노 대표는 “연구 논문을 보고 노보 노디스크와 통화동보제약 측에서 먼저 협력(파트너십)을 제안했다”며 “일라이릴리와도 당뇨병 치료제 개발에 관한 긍정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RNA로 당뇨병 완치 효과 기대

노승일 대표는 원광대 분자생물학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캘리포니아주립대 새크라멘토캠퍼스(CSUS)에서 생명과학 석사, 네바다주립대 리노캠퍼스에서 분자생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네바다주립대 의대에서 생리학 및 세포생물학 박사후과정, 연구 조교수 등을 거쳐 현재 이 대학의 세포생리학과 부교수를 맡고 있다.

노 대표는 약 20년간 당뇨성 소화장애를 중점적으로 연구해왔다. ‘네이처 제네틱스(Nature Genetics)’ ‘네이처 리뷰(Nature Reviews)’ 등 학술지에 53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6개의 특허도 가지고 있다. 그는 연구 과정에서 발견한 ‘항당뇨성 마이크로 리보핵산(마이크로RNA)’을 기반으로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올 2월 미국 네바다주에 로스비보를 설립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이 항당뇨성 마이크로RNA에 주목했다.

우리 몸은 디옥시리보핵산(DNA)에 담긴 유전정보를 메신저리보핵산(mRNA)을 통해 전달해 필요한 단백질을 만든다. 이때 마이크로RNA는 mRNA와 결합해 단백질 생성을 중단시키는 방식으로 단백질 생산량을 조절한다.

당뇨병의 가장 큰 원인은 췌장 베타세포의 사멸 또는 기능 상실이다. 베타세포는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을 만든다. 혈당이 증가하면 이를 조절하기 위해 인슐린 분비량도 늘어난다. 이로 인해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세포에 무리가 가게 되고, 베타세포의 기능 상실 등으로 이어진다.

노 대표는 “베타세포는 한 번 퇴화돼 사멸하면 재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당뇨병의 완치가 힘든 것”이라며 “기존 치료제는 당을 낮춰 진행을 늦출 수는 있지만, 한 번 진행된 병의 완치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노 대표가 발견한 항당뇨성 마이크로RNA는 베타세포의 기능을 회복시킨다. 로스비보는 항당뇨성 마이크로RNA 기반 당뇨병 치료제 후보물질(RSVI-301)을 개발 중이다. RSVI-301을 인체에 주입하면 ‘KLF11’ 단백질 생성이 억제된다. KLF11은 세포의 성장을 막고 세포자멸사를 유발한다. KLF11를 억제해 베타세포의 사멸을 막고 재생을 유도하는 것이다.

노 대표는 “동물실험 결과 항당뇨성 마이크로RNA가 베타세포의 기능을 회복시켜 당뇨병을 치료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RNA를 주사한 당뇨 쥐에서 베타세포 재생이 관찰되고, 인슐린 분비량이 늘었다.

기존 치료약 대비 효과 및 지속성도 뛰어났다. 그는 “기존 당뇨병 약을 투여한 쥐의 혈당은 일시적으로 떨어졌다가 투여를 중단하자 다시 증가했다”며 “RSVI-301 투여 쥐는 6개월간 당 수치가 정상적으로 유지됐다”고 설명했다.

투입한 마이크로RNA의 숫자나 회복된 베타세포의 기능이 영구적인 것은 아니다. 식이요법이나 운동을 소홀히하면 다시 당뇨병이 진행된다고 했다. 노 대표는 첫 주사투여 후의 효능 지속기간을 약 2개월로 보고 있다. 투여횟수가 늘수록 이 기간이 길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당뇨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세계 최초의 ‘근치적(根治的) 당뇨병 치료제’가 될 것이란 예상이다. 현재 시판 중인 당뇨약은 환자와 약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일 1~2회, 길어도 주 1회 투여받아야 한다.

노 대표는 “글로벌 제약사 3곳과 조만간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해 당뇨병 치료제 공동개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며 “국내와 일본 임상개발 협력사도 물색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여러 제약사와 기술이전을 전제로 한 공동 임상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당뇨병 환자용 코로나19 치료제도 개발

로스비보는 RSVI-301의 당뇨병 임상 1상을 내년 말이나 2023년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청할 계획이다. 비임상 및 임상용 약은 위탁생산한다. 약 생산에 3~6개월, 독성 시험 1년 등을 고려한 일정이다.

임상개발을 위해 투자도 유치했다. 넥스턴바이오로부터 지난 5월 약 550만달러(약 65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넥스턴바이오는 로스비보 지분 50%를 취득했다.

또 다른 마이크로RNA를 활용해 코로나19 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노 대표는 사람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면 특정 마이크로RNA가 소실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마이크로RNA는 세포 속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항코로나 바이러스 마이크로RNA’다.

이미 포화상태인 코로나19 치료제 시장에서 로스비보는 당뇨병을 결합해 승부한다는 전략이다. 당뇨병 환자를 위한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항코로나 마이크로RNA와 항당뇨 마이크로RNA를 혼합해 사용하는 병용투여 방식이다.

노 대표는 “당뇨병 환자가 코로나19에 걸리면 치사율이 2배로 높아진다”며 “당뇨병 환자는 기존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만으로 치료나 예방이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동물실험에 돌입했다. 결과는 내년 초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FDA 신속심사(패스트트랙) 대상으로의 선정도 기대하고 있다.

로스비보의 우선 목표는 항당뇨성 마이크로RNA로 당뇨병 환자를 완치시키는 것이다. 노 대표는 “세계 당뇨병 환자들이 완치되는 쾌거를 이루는 시대가 올 때까지 치료제 연구개발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