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외국계 증권사 보고서가 남긴 파문
“쓴소리하는 외국 증권사가 애국 증권사네요.”

최근 여의도 증권가 직원들이 모여 있는 메신저 텔레그램의 단체방에선 외국계 증권사 CLSA의 보고서가 화제에 올랐다. 이 증권사는 지난 8일 ‘이상한 나라의 은행업(Banking Wonderland)’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대출 규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보고서는 “여당은 부동산 정책을 쏟아내면서 집값 급등을 불러왔다”며 “대선을 앞두고 집값을 안정화하기 위해 도입한 정부의 대출 규제가 시장 원리를 훼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관련 기사를 작성한 직후 기자와 CLSA 한국법인에 “보고서를 구할 수 없느냐”는 문의가 쏟아졌다.

한 운용사 펀드매니저는 CLSA 보고서에 대해 “적잖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속 시원한 내용”이라며 “외국계 증권사만 정부·여당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이 한국 자본시장의 ‘현주소’”라고 씁쓸해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CLSA 한국법인 폴 최 리서치센터장은 정부·여당의 규제와 대선용 정책이 한국 시장 매력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집값을 밀어 올린 부동산 정책을 풀면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며 “부동산 시장으로 향하는 ‘돈줄’을 죄면서 가격 급등을 막으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같은 맥락에서 한국은행도 이달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CLSA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주장으로 시장금리가 치솟고 있다고도 평가했다. 정부의 대출 규제로 시중 유동성 증가 속도가 둔화한 데다 재난지원금 주장으로 시장금리가 오르는 등 한국 시장 투자 여건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최 센터장은 “시장의 역할을 옥죄는 정책으로 (유가증권시장이) 선진국 시장에서 멀어지고 있다”며 “한국 시장 투자를 방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최근 한국 시장을 등지는 외국인 투자자가 늘어나는 점을 고려하면 CLSA 경고를 흘려듣기 어려운 상황이다. 외국인은 3년 만기 국고채 선물을 10월과 이달에 각각 7만4099계약(7조4099억원), 2624계약(2624억원)을 순매도했다. 지난 10월부터 이달 12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는 3조6485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최근 들어 부쩍 정부·여당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증권사 채권 브로커들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 보도가 나올 때마다 채권 가격이 눈에 띄게 밀린다”고 말했다. 표심몰이용 대선 정책이 외국인 이탈을 부추긴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