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선진국 자산시장이 성장하는 동안 신흥국은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미국 유럽 등이 돈 줄을 죌 것이란 신호를 보내면서 신흥국까지 퍼졌던 투자금이 빠져나가면서다. 2013년 신흥국 경제에 타격을 준 ‘긴축 발작(테이퍼 탠트럼)’이 재연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신흥시장 MSCI지수 상승률이 이달 들어 0%로 돌아갔다고 5일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MSCI지수는 주식 등 금융자산시장 성장세를 판단하는 지표다. 지난 2월 중순 10% 넘게 오르며 선진국을 추월했던 신흥국 MSCI지수는 하반기 이후 완연한 하락세를 보였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MSCI지수는 꾸준히 상승해 올 들어 20% 넘게 뛰었다.

JP모간의 신흥국 채권지수도 올해 8.1% 하락했다. 선진국 채권지수가 1.5% 내려간 것을 고려하면 신흥국 채권 가치가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는 뜻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에 들어가면 신흥시장 자산 가치가 더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13년 경험했던 테이퍼 탠트럼이다. 당시 Fed가 돈 푸는 양을 줄이자 신흥국 자산시장에선 매도 행렬이 이어졌다. 민나 쿠시스토 덴마크 단스케방크 글로벌연구책임자는 “성장이 둔화하고 물가가 오르는 시나리오를 향해 가고 있다”며 “일반적으로 신흥시장엔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했다.

국제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신흥시장에서 공황적으로 자산을 매도한 외국인은 이후 19개월간 7900억달러를 신흥시장에 쏟아부었다. 각국 중앙은행이 수조달러에 이르는 돈을 찍어내면서 세계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급격한 물가 상승을 견디지 못해 많은 신흥국이 올초부터 긴축에 들어갔다. 일부는 기준금리를 올렸다.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가 신흥국 성장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흥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된 중국의 성장세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한 것도 악재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속도도 늦어져 감염병으로부터의 회복 속도가 지연될 위험까지 남았다. 에너지 가격 상승의 영향도 선진국보다 신흥국이 크게 받을 가능성이 높다. 경제 기반이 취약해서다. 인도 터키 이집트 등이 가장 취약한 나라로 꼽힌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