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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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사채(CB) 리픽싱(전환가격 조정)은 시장참여자들 사이에서 오랜 논쟁거리였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기존 주주에게 불리했던 CB 리픽싱 규정을 바로 잡겠다는 취지에서 전환가액 상향 조정 의무 방안을 내놨다. 지분가치 희석을 우려했던 기존 주주들에겐 희소식이지만 코스닥 상장사들 입장에서는 자금조달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보니 마냥 환영할 수 만은 없다. 그동안 코스닥 기업들은 리픽싱 조건이 달린 CB를 저리 조달의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는 오는 12월부터 주가가 오르면 CB의 전환가액도 상향 조정하는 것을 의무화하도록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다. 상향 조정 범위는 최초 전환가액의 70~100%로 제한했다.

CB를 주식으로 바꿀 때 적용하는 주당 가격을 전환가액이라고 한다. 지금은 전환가액에 대한 규정이 없어 발행사는 투자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주가가 하락하면 가액을 낮춰주고, 이후 다시 주가가 올라도 이를 상향하진 않았다.

그동안 CB 투자는 투자자들에게 쏠쏠한 수익을 안겨줬다. CB는 이자를 받다가 주가가 상승하면 미리 정한 전환가로 전환해 추가 이익을 거둘 수 있어 매력적인 투자상품이다.

예컨대 한 코스닥 상장사가 1년 만기 CB를 발행하면서 전환사채 만기보장 수익률 5%, 전환가격 1만원으로 정했다면 향후 1년 동안 이 회사 주가가 1만원에 못 미칠 경우 투자자는 만기까지 보유했다가 5%의 이자만 받으면 된다. 반면 이 기업 주가가 올라 1만5000원이 됐다면 주당 5000원에 이르는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다.
시장 건전성 잡겠다지만…"투자자 짐쌀라" 우려 [CB 전환가액 상향 의무화②]
CB는 코스닥 상장사 입장에서도 유용한 자금조달 수단이다.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보다 낮은 이율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규모가 작은 상장사들이 주로 CB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하지만 이번 CB 규정 강화로 인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만약 A상장사가 1만원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CB를 발행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후 주가가 5000원으로 떨어지자 A상장사는 전환가액을 5000원으로 낮췄다. 이후 주가가 1만2000원까지 올랐다. 지금은 주가가 다시 상승해도 전환가액을 5000원으로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면 전환가액을 최대 1만원까지 다시 올려야 한다.

전환가액 상향이 의무화되면 CB 투자로 얻는 시세차익이 급격히 줄게 된다. A상장사 CB 10만원어치를 산 투자사는 전환가액이 5000원일 때 20주를 받을 수 있지만 가액이 다시 1만원이 되면 10주만 받는다. 결국 CB 투자자들은 만기 때까지 채권을 보유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문제는 원리금 상환 여력이 크지 않은 상장사의 경우다. 투자 매력이 떨어진 CB 발행으로 자금을 끌기 위해선 높은 이자를 지급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또 CB 전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만기 시점에 기업들이 사채를 전액 상환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CB를 차환발행 하는 형태로 상환자금을 마련해왔던 구조가 더이상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 신용도가 낮은 CB 발행 상장사의 부실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코스닥업계 한 관계자는 "CB 발행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의 코스닥 상장사들은 신사업이나 운영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저리로 자금을 끌어오는 수단"이라며 "CB 투자사들이 주식 전환이 아닌, 만기 보유 후 투자금 상환을 요구하며 회사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 리픽싱 제도가 CB 투자자에게 지나치게 유리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던 것도 사실이다. CB 투자자가 전환권을 행사할 경우 발행 주식수가 늘어나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을 희석한다는 점에서 이번 제도 개선은 기존 주주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을 통해 CB 시장의 건전성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며 "CB가 최대주주의 편법적 지분 확대나 불공정 거래에 이용되는 행위가 억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