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인플레이션의 정치학
미국인 중 53%가 현재 최대 걱정거리로 인플레이션을 꼽았다. 폭스뉴스가 최근 미국 성인 1003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다. 코로나19를 가장 염려한다는 비율(35%)보다 월등히 높았다. CNBC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인플레이션을 제일 우려하고 있었고 그 비율이 3개월 전보다 16%포인트 상승했다.

물가 상승률 13년 만의 최대

CNBC는 “집값과 물건값 등 안 오른 게 없어 미국인들이 인플레이션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미국 물가는 2008년 이후 13년 만에 최대폭으로 뛰었다. 5개월 연속 연간 물가 상승률이 5%대를 기록 중이다. 미 중앙은행(Fed)의 목표치인 2%를 한참 웃돌고 있다. 한 달 만에 30% 넘게 오른 유가가 인플레이션 속도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갈수록 심해지자 원인과 책임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먼저 조 바이든 행정부는 물가 상승을 경제 재개의 일시적 현상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을 공급망 문제로 몰아가고 있다. 공급 부족과 물류 대란 때문에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동시에 공급망 문제를 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반도체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삼성전자 등을 백악관으로 부른 게 대표적이다. 틈만 나면 바이든 대통령은 공급망과 관련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지난 14일 로스앤젤레스(LA)항과 롱비치항을 연중 풀가동하겠다는 발표도 그런 만남을 통해 나왔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가 초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공급망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라며 “연방정부 지원이 필요하면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간 부문이 나서지 않는다면 그들을 불러 행동하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은연 중에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민간의 공급 부족으로 몰아간 것이다. 동시에 ‘인플레이션 파이터’가 돼 그 문제만 해결하면 인플레이션이 잡힐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 했다.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의 이런 태도를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주범인데 남 탓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과도한 돈 풀기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핵심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바이든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의 통제 불가능한 지출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엘리스 스터파닉 공화당 하원의원은 “민주당의 무모한 지출 때문에 물가가 치솟고 있다”며 “결국 인플레이션은 민주당의 무분별한 지출과 무자비한 세금 정책의 소산”이라고 혹평했다.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광기의 극좌 정치인들이 미 정부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겨울은 인플레이션의 계절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정치권의 '아전인수' 해석

민주당도 발끈하고 있다. 돈 풀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 시작됐다고 받아쳤다. 그러면서 공화당 역시 의회에서 경기부양책에 찬성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3월 미 의회를 통과한 3조달러 규모 코로나19 지원 법안이나 올해 3월 확정된 1조9000억달러어치의 미국 구조 계획을 단적인 예로 거론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과 공화당은 인플레이션 정국에서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다. 민주당은 공급 부족을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몰아가는 반면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의 과도한 돈 풀기를 인플레이션 주범으로 여기고 있다. 미국 정치권에서 인플레이션이 아전인수 형태로 소비되는 사이 미국 내 물가는 계속 급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