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의 ‘헤지펀드 거물’ 데이비드 아인혼,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 최근 1주일간 미국 정부의 통화정책에 경고 목소리를 높인 이들이다. 도시는 세계가 인플레이션을 넘어 하이퍼(초) 인플레이션에 진입할 것이라고 했다. 각국 중앙은행의 돈 풀기 경쟁 탓에 세계 경제가 풍전등화라는 의미다.

정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 등은 여전히 ‘일시적’ 물가 상승이란 진단에 무게를 뒀다. 무너진 공급망이 회복되고 급격한 소비 수요가 진정되면 물가도 안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 경제 상황을 두고 정부와 시장이 엇갈린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잭 도시 "超인플레 온다" vs 옐런 "내년 진정"

옐런, 내년 하반기 물가 회복

옐런 장관은 24일(현지시간) CNN ‘스테이트 오브 유니온’에 출연해 미 물가상승률이 내년 하반기 진정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그는 “월간 물가상승률은 올봄과 초여름보다 둔화했다”며 “(누적된 상승 요인 탓에) 연간 물가상승률은 내년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하반기께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이 “Fed가 치솟는 물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것”이라고 비판한 데 대한 답변이다.

올 9월 기준 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4% 올랐다. 5월 이후 5개월째 5%대 고물가를 유지했다. 미 정부는 지난해 겪은 극심한 경기 침체와 올해 초 소비 수요 급증이 물가를 끌어올렸다고 판단한다. 파월 의장은 지난 22일 “공급망과 노동 문제가 해결돼 물가상승률이 2%대로 하락하는 게 가장 가능성 높은 경우의 수”라고 했다. 여전히 ‘일시적’ 위험이라는 뜻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런 진단에 힘을 보탰다. 기타 고피너스 IMF 수석경제학자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물가 상승은 지난해 경기 침체 이후 예견된 것”이라며 “내년 말 정상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격 올리는 소비재 기업들

정부와 달리 민간기업 등에선 강한 ‘위기 경보’를 울리고 있다. 미 시장조사기관 IRI에 따르면 미국의 소비재 물가지수는 이달 초 모든 항목에서 100 이상을 유지했다. 강한 오름세란 의미다. 베이컨 등 육가공품과 신선 식재료 등의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다.

세계 최대 비누회사인 영국 유니레버는 올 상반기에 이어 3분기에도 제품 가격을 4.1% 인상했다. 급등한 생산 물가를 감당하기 위해서다. 식품기업 네슬레의 제품 가격도 올 3분기 2.1% 올랐다. 프록터앤드갬블(P&G)도 조만간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할 예정이다.

가격을 올리는 기업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비싸도 매출이 줄지 않는다는 경험이 쌓여서다. 상점을 찾을 때마다 더 비싼 가격표를 마주하게 되는 ‘스티커 쇼크’가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을 어렵게 만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물가 상승 위험 경고하는 기업가들

큰손 투자자들도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아인혼은 최근 투자자 대상 서신을 통해 “Fed 의장이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며 “인플레이션이 찾아왔고 더 악화될 것”이라고 했다. Fed 전망처럼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아이칸엔터프라이즈 창업자인 아이칸도 “유동성 공급과 물가 상승 탓에 미 경제가 장기적으로 큰 벽에 부딪힐 것”이라고 했다.

인플레이션 위험이 시장이나 사회가 갖고 있는 ‘두려움’보다 더 클 것이란 진단도 나왔다. 튜더인베스트먼트의 폴 튜더 존스 창업자는 “수조달러의 재정 지원과 경기부양책은 높은 물가를 연장시키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정부가 푼 막대한 자금이 주식과 암호화폐 투자, 실물 경제에 녹아들었기 때문에 물가는 계속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월스트리트의 ‘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CEO)도 CNBC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미국 물가상승률이 4%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