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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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최대 8000억엔(약 8조1924억원)을 투자해 일본 히로시마현에 D램 공장을 건설한다. 최근 구마모토현에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대만 TSMC와 비슷한 행보다. ‘백화점식’ 글로벌 기업 유치로 자국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려는 일본 정부의 산업전략이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TSMC처럼 보조금 받을 듯

美 마이크론까지 품은 日…韓 반도체 위협
20일 일본공업신문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히로시마현 히가시히로시마에 있는 기존 시설 인근에 새로운 공장 부지를 매입할 계획이다. 새 공장 건설엔 6000억~8000억엔이 투자될 전망이다. 가동 시기는 2024년께로 점쳐졌다. 중장기적으로 데이터센터와 다른 설비용 D램 수요를 충족하는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신문은 이번 투자가 2000~3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도 앞서 22~28㎚(1㎚=10억분의 1m) 공정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장을 일본에 신설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TSMC는 2022년 구마모토현에 공장을 짓기 시작해 2024년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TSMC 투자액의 절반인 5000억엔(약 5조1310억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전략 바꾼 일본

일본은 반도체 소재와 장비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만 반도체 완제품을 생산하는 곳은 낸드플래시업계 2위인 키오시아뿐이다. 이 회사도 매각 수순을 밟고 있다. 업계 3위인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인수를 추진 중이다. 일본의 마지막 반도체 기업이 해외에 팔릴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일본 정부는 느긋하다. 본사만 일본에 둔다면 매각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일본은 모든 공급망을 자국에 둬야 한다는 ‘주식회사 일본’ 전략을 공식 폐기한 상태다. 지난 6월 일본 정부는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주문하는 전략을 내놓으면서 기업의 ‘국적’보다 ‘지정학적 위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산업성은 성장 전략의 각론인 통상백서를 통해 “해외 기업과 경쟁하기보다 이들 기업을 자국에 유치하고, 글로벌 세력을 구축하는 동시에 기술 개발에서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의 무기는 반도체 소재와 장비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자국 기업들이다. 일본에 공장을 지으면 소재와 장비를 손쉽게 확보할 수 있고 연구개발(R&D)에도 보탬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 기업의 세계 실리콘웨이퍼 점유율은 60%, 레지스트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업계에선 한국 기업들이 공급망 관리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 소재·장비 업체들이 자국 내에 공장을 둔 글로벌 기업에 우선적으로 물량을 배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반도체 기업이 제대로 가동되려면 일본산 장비와 소재가 꼭 필요하다”며 “일본 반도체 생태계에 들어가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