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옥동 신한은행장이 20일 서울 남대문로 신한PWM프리빌리지 서울센터에서 전통 은행에 필요한 변화 방향을 말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20일 서울 남대문로 신한PWM프리빌리지 서울센터에서 전통 은행에 필요한 변화 방향을 말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올해 초 회사 비전을 ‘일류 디지털 컴퍼니’로 제시했다. ‘은행’이라는 단어는 뺐다. 진 행장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1994년에 일찌감치 ‘금융(banking)은 필요하지만 은행(bank)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며 “전통 은행이 해오던 역할과 기능이 정말 사라지고 있어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뼛속까지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직원 인사기록에서 생년월일을 모조리 없애는 방안까지 생각해봤다”고 했다. ‘나이를 따지지 않고 능력 있는 인재가 혁신을 시도할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진 행장은 “이미 검증된 성공 방식도 과감히 바꾸면서 선을 넘어봐야 진정한 전환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데이터 해석 능력이 경쟁력

진 행장은 요즘 경영환경의 특징으로 ‘예측 불가능성’과 ‘빠른 변화’를 꼽았다. 그는 “앞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에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느냐가 조직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며 “은행에는 고객의 요구를 예측하고 준비해 제안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진 행장은 이런 능력을 갖추기 위한 데이터 해석과 활용을 은행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최근 직원을 대상으로 데이터 문해력을 높이는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그는 “데이터를 모아 연결하고 해석·예측하는 능력이 은행원의 핵심 경쟁력인 시대가 오고 있다”고 했다.

의사결정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면 부장부터 행장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내다봤다. 진 행장은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변화를 도모하는 조직을 꾸리는 게 목표”라며 “방향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심리적 안정감을 갖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게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는 건 시간 문제”라고 덧붙였다.

세대교체 안 하면 위기 올 수도

그는 “4~5년 내 은행업이 큰 ‘제너레이션 체인지(세대교체)’를 겪을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업(業)의 본질’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은행업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게 주요 수익원이었다.

진 행장은 “대출이 은행의 핵심 역할이나 기능이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며 “자산운용의 초점이 대출에서 투자로 이동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그는 “투입된 자금으로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운용 능력이 은행 선택의 기준이 될 것”이라며 “이런 시대 변화에 맞춰 업무 전반에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이상 ‘전통적 금융회사’의 역할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얘기다.

진 행장은 “지금 잘된다고 전환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며 “일본은 수년간 전환을 시도하지 않아 ‘스타트업의 무덤’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오사카지점장, SBJ(신한은행 일본법인) 법인장 등 일본에서 19년간 일한 은행권의 대표적 ‘일본통’이다.

진 행장은 “일본이 글로벌 경제에서 주도권을 잃은 것은 세대교체에 주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 산업계는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 뭐든지 조금씩 개선할 수 있다는 ‘장인정신’이 뿌리 내려 있다”며 “장인정신의 장점이 많지만 전략이나 행동의 전환이 없으면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관행 깨야 미래 있다

국내 금융계를 리드하는 신한은행은 최근 ‘은행답지 않은 전략’을 틈틈이 시도하고 있다. 진 행장은 “빅테크 등 혁신적인 시장 참여자가 계속 등장하고 밀레니얼세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등이 시대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며 “고정관념을 버리고 전에 없던 실험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9년 말 신한은행의 이듬해 순이익 목표를 10% 낮췄다. 신한은행이 순이익 목표를 낮춘 것은 1982년 창립 후 처음이었다. 경영 전망이 아무리 어두워도 최소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목표로 내걸던 관행을 깬 것이다. 대신 고객 만족도와 편의성에 초점을 맞춰 금융상품, 영업 체계를 대폭 개편했다.

이를 두고 한동안 회사 안팎이 시끄러웠다. “열심히 안 하고 놀겠다는 거냐” “금융지주 ‘맏형’의 모양새가 빠진다” 등 날카로운 반응이 많았다. 이사회에선 “다른 은행들은 순이익 더 낸다는데 이래도 되느냐”고 지적했다. 진 행장은 “리더가 전환을 결심한다고 해서 마법처럼 ‘짠’하고 조직이 바뀌는 게 아니다”며 “조직에 전환의 이유와 내용을 설명하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당시 그룹 경영진과 이사회, 직원들에게 순이익을 낮춰야 하는 이유를 포함한 향후 계획을 세세히 공유했다. 수익에 초점을 맞춘 기존 영업 체계를 그대로 둘 수 없는 상황부터 설명했다. 진 행장은 “당장 연간 순이익 1500억~2000억원이 줄어도 고객 편의성을 높이는 인프라에 투자하고 영업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연간 1500억원을 3년만 포기하고 혁신에 몰두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순혈 DNA’도 손봐

외부 수혈도 진 행장이 던진 승부수다. 내부 역량을 주로 활용해 성장에 집중하는 ‘순혈주의’가 강한 국내 은행권에선 이례적이었다. 신한은행은 2020년 12월 김혜주 KT 상무, 김준환 SK C&C 상무를 임원으로 영입했다.

김혜주 상무는 국내 1세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김준환 상무는 빅데이터·인공지능(AI) 분야 전문가다. 진 행장은 이들을 영입하기 위해 회사 지배구조 내부 규범까지 개정했다. 임원의 범위에 ‘상무 호칭을 사용하는 전문계약 인력’을 추가했다.

진 행장이 드라이브를 거는 전환의 결과가 반드시 좋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는 “결과가 나쁘다고 좌절해선 안 된다”며 “문제가 있다면 그 점을 반영해 다른 전환을 시도하면 된다”고 말했다.

진 행장은 “내년 순이익 목표도 보수적으로 보고 있다”며 “남은 3개월간 더 검토해봐야겠지만 무리한 목표는 잡지 않고 미래 준비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고 했다.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내년 3월 코로나19 긴급 대출 만기와 상환 유예가 끝날 때쯤 큰 위기가 들이닥칠 수도 있다”며 “리더가 당장 욕을 먹기 싫다고 미래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라고 강조했다.

■ 진옥동 신한은행장 이력

△1961년 전북 임실 출생
△1980년 11월 기업은행 입행
△1981년 2월 덕수상고 졸업
△1986년 신한은행 입행
△1993년 한국방송통신대 경영학과 졸업
△1996년 중앙대 대학원 경영학과 졸업
△1997년 신한은행 일본 오사카지점
△2004년 신한은행 자금부
△2008년 신한은행 일본 오사카지점장
△2011년 일본 SH캐피털 사장
△2014년 SBJ(신한은행 일본법인) 부사장
△2016년 SBJ 법인장
△2017년 신한은행 부행장·신한금융지주 부사장
△2019년~ 신한은행장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