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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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인사이트 10월 12일 오후 4시50분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진이 기내식 공급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 상대방인 게이트고메그룹에 30년간 이익을 보장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같은 계약으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진행 중인 대한항공이 수천억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12일 한국경제신문 마켓인사이트 취재를 종합하면,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2016년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이 게이트고메그룹에 2047년까지 30년간 순이익을 보장하는 데 합의했다.

이런 내용은 게이트고메가 아시아나항공을 상대로 보장된 이익을 지급하라며 싱가포르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에 국제중재를 신청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ICC는 게이트고메의 주장을 받아들여 아시아나항공이 계약상 초기 2년간 보장 금액과 지급한 금액의 차액인 424억원을 양사의 합작사인 게이트고메코리아에 지급하라고 최근 판정했다. 검찰은 이 같은 사실을 공소장에 적시하고 “아시아나항공이 부담해야 할 30년간의 손해가 최소 3700억원에 달한다”고 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박 전 회장의 배임과 관련한 재판에선 계약조건을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진이 아시아나항공 경영진에게 알리지 않은 점도 확인됐다. 증인으로 나온 조홍상 스프링파트너스 고문은 “아시아나항공 대표에게는 기내식 계약 내용을 보고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그동안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16년 금호홀딩스(현 금호고속)가 발행한 1600억원 규모의 20년 만기 무이자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게이트고메와 기내식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아시아나 합병에 불똥 튈라…대한항공, 대책 마련 고심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계약 내용이 드러나면서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을 진행 중인 대한항공은 상황을 살피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게이트고메 간 계약은 매년 정해진 금액의 순이익을 기내식업체가 달성할 수 있도록 아시아나항공이 지급하는 기내식 가격을 조정해주도록 설계됐다.

아시아나항공이 부담해야 할 향후 30년간 손해가 합병법인인 대한항공에도 승계될 수 있다. 법조계에선 중재 소송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합병계약 체결 이전부터 진행된 사안인 만큼 이번 판정이 M&A 계약의 취소 사유는 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계약은 2015년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금호그룹 재건 계획에서 시작됐다. 그룹 경영진은 워크아웃 과정에서 상실한 지배권을 되찾기 위해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인 금호산업 주식을 다시 사들이자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자금줄로 부상한 게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사업이었다.

금호그룹은 2016년 아시아나항공이 기존 거래하던 업체(LSGK)와 계약 종료를 2년여 앞둔 시점에 LSGK를 포함한 기내식 사업자들에 금호홀딩스(현 금호고속)에 자금을 지원하면 기내식 공급권을 주겠다는 거래를 제안했다. 이 제안에 게이트고메가 응했고, 양사는 2016년 2월 금호홀딩스가 발행한 1600억원 규모의 무이자 만기 20년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게이트고메가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양사는 6월 합작사 게이트고메코리아(GGK)를 세웠다. 금호그룹 경영진은 BW 인수 계약의 대가로 기내식 공급 과정에서 확정적인 이익을 보장하기로 했다.

정작 아시아나항공 경영진과 이사회는 이 같은 계약 및 BW 거래 과정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당시 금호그룹 경영진은 “단순한 업체 변경 계약일 뿐 BW 계약과 어떤 연관성도 없다”고 아시아나항공 이사진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순이익 보장’ 여부도 아시아나항공 이사회 회의록 등에 전혀 기재되지 않았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대한항공은 긴장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금호그룹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주식을 사오는 게 아니라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한 신주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보니 금호그룹에 책임을 묻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중재 판결 불복 절차 등 추가 대책 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차준호/안효주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