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기시다 자본주의'…이번엔 분기 대신 반기보고서?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새로 출범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내각이 잇따라 자본시장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부유층의 주식 매각차익과 배당에 더 많은 세금을 걷는 금융소득세 개선안이 역풍을 맞자 이번에는 상장사의 분기 결산을 완화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11일 일본 증권가는 기시다 총리의 국회 소신표명 연설(새로 취임한 총리가 국회에서 현안에 대한 기본인식을 발표하는 연설)을 놓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8일 "기업이 장기적인 시점을 갖고 주주 뿐 아니라 종업원과 거래처에도 혜택을 줄 수 있는 경영을 해 나가야 한다"며 기업의 분기 결산제도 개선을 시사했다.

일본은 1999년 도쿄증권거래소 규정으로 분기결산 제도를 단계적으로 도입했고, 2008년 금융상품거래법으로 의무화했다.

하지만 기업이 3개월마다 실적을 공개하다보니 눈 앞의 주가와 단기 이익만 따진 나머지 장기투자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도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이 분기 결산 폐지를 주장했다. '분기 자본주의'는 미국 경제와 가계 모두에 유해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도 2010년대 분기 결산 의무화를 폐지했다. 다만 유럽 국가들은 분기 결산 폐지 이후에도 대부분의 상장사들이 투자가 유치를 위해 자체적으로 분기 실적을 공시하고 있다.

기시다 내각이 분기 결산제도에 손을 대려는 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인 생산성을 높이지 않고는 일본 경제를 회복시킬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일본 경제가 만성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근로자 평균 연봉이 30년 동안 오르지 않아서이며 이는 낮은 생산성으로 인해 기업들이 임금을 적극적으로 올리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기시다 내각은 낮은 생산성의 원인을 미국과 프랑스의 5% 수준인 일본 기업의 인적투자에서 찾고 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능력개발비(2010~2014년)는 국내총생산(GDP)의 0.1%였다. 미국은 2.08%, 프랑스는 1.78% 였다.

하지만 일본 경제전문가들은 반기 결산제도를 완화하면 글로벌 자금이 일본 증시를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 대형 투자기관 관계자는 "미국 및 유럽과 반대로 일본 상장사가 분기 보고서를 내지 않으면 해외 투자가의 일본회피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말했다.

인적투자를 늘리려면 기업의 정보개시를 줄일게 아니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21세기 지식집약형 경제체제에서 투자가들은 기업의 경쟁력을 인재 보유 현황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올해부터 상장기업에 인적자본에 대한 정보 공시를 의무화했다.

기업이 분기 결산 부담 때문에 장기투자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1970년 반기결산을 의무화했을 때 0.97%였던 미국의 GDP 대비 기업 연구개발비는 2019년 2.16%로 2배 이상 늘었다. 일본의 인재투자비가 줄어든 것도 반기결산 의무화 이후가 아니라 버블(거품) 경제가 붕괴한 1990년대부터였다.

지난 4일 출범한 기시다 내각은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새로운 일본형 자본주의'를 간판 정책으로 내걸었지만 구체적인 정책을 낼 때마다 자본시장에 충격만 주고 있다. 첫번째 대책으로 금융소득세 개선안을 내놓은 이후에는 닛케이225지수는 12년 만에 8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결국 기시다 총리는 전날 후지TV에 출연해 "당분간 금융소득세를 건드릴 생각이 없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일본 언론들이 주가 약세를 '기시다 쇼크'라고 표현하는 등 시장에 주는 충격을 고려한 변화로 풀이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