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또 폭락 위기에 처했던, 뉴욕 증시를 구한 두 사람
6일(현지시간) 미국 동부 시간으로 새벽 유럽 시장에서 천연가스가 또다시 20~40%씩 폭등하자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커졌습니다. 물가 우려에 금리(미 국채 10년물)까지 연 1.57%까지 치솟자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 선물은 1%대 내림세를 보였습니다.

개장 전 발표된 고용정보업체 ADP가 집계하는 미국 9월 민간 고용은 전월보다 56만8000명 증가해 시장 예상(42만5000명)을 웃돌았습니다. 그나마 하락 폭이 줄어 주요 지수는 0.7~0. 9% 수준의 내림세로 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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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전날 애틀랜타연방은행은 'GDP나우'에서 3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추정치를 1.3%까지 낮추면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진 가운데 에너지 가격의 지속적 폭등은 1970년대 오일쇼크가 촉발한 스태그플레이션을 다시 떠올리게 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지난주 국영에너지 기업에 무차별 에너지 확보를 지시한 뒤 세계 에너지 가격은 연일 폭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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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아침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의 그레그 젠슨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블룸버그가 개최한 글로벌 투자 콘퍼런스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 진정한 위험이며 많은 포트폴리오가 대규모로 노출되어 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증가하고 있지만, 실제 가장 큰 위험은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의 조합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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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CIO는 미 중앙은행(Fed)이 테이퍼링을 하는 건 인플레이션 위협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Fed는 그들이 필요하지 않다면 자산매입축소를 하지 않을 것이다. Fed가 테이퍼링을 하는 유일한 이유는 경기를 둔화시키지 않으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Fed는 지금 확연히 자신들의 목표를 웃도는 인플레이션에 부딪쳐 과거처럼 돈을 찍어내기 어렵다"라고 덧붙였습니다. Fed가 높은 물가로 인해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에 내몰릴 경우 침체 가능성을 높일 것이란 경고입니다.

천연가스, 유가 등 에너지 가격이 계속 올라간다면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스 전기 부족은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공장 가동 중단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씨티는 올겨울 날씨가 추울 경우 천연가스가 100달러를 넘을 수 있다고 예상합니다. 골드만삭스는 4분기 유가가 배럴당 90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다만 월가 모두가 같은 의견인 건 아닙니다. 모건스탠리는 전날 보고서에서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이 앞으로 몇 주안에 진정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① 러시아의 잉여 가스가 국내 저장고에 주입되고 있는데 10월 말이면 완료되고 늦어도 11월이면 유럽으로의 공급이 늘어날 것이다 ② 러시아 국영에너지회사 가즈프롬의 유지 보수 시즌은 일반적으로 11월이면 마무리된다 ③ 가즈프롬이 4일 노드스트림2 가스관에 가스를 넣기 시작했는데 이는 공급 제약 문제를 완화할 것이다 ④ 가스 가격 급등은 수요의 감소를 부르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고가 정상속도로 쌓이고 있다 ⑤ 유럽의 가스 저장 수준은 과거 평균과 가깝다. 직전인 2019~2020년 재고 수준이 과잉이었다. 우리는 4분기, 2022년 천연가스 가격을 지금보다 각각 -56%, -40%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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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모간은 또 다른 이유로 괜찮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JP모간은 "우리는 현재 에너지 가격이 경제에 심각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석유가 배럴당 130~150달러에 달해도 경제와 증시는 잘 작동할 수 있다고 본다. 석유는 전반적으로 현재의 자산가격에 비하면 저렴하다"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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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고민은 이날 풀렸습니다.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의 열쇠를 쥐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공급 확대 방침을 밝혔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에너지 관련 화상회의에서 "러시아는 아시아와 유럽에 가스공급 의무를 수행했다. 현재 속도로 공급을 진행하면 2021년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량이 사상 최대를 경신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가스프롬이 '노드스트림2'를 통해 대폭 싸게 가스를 공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유럽은 러시아가 '노드스트림2' 조기 가동을 압박하기 위해 가스공급을 제한해왔다고 의심해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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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지자 20~40%씩 급등하던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급락했습니다. 유럽의 벤치마크인 네덜란드 TTF 가격은 전날 메가와트시당 116.5유로에서 이날 132.93유로까지 치솟았다가 결국 전날보다 8.98% 떨어진 106.03유로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미국의 천연가스 가격도 9.36% 떨어진 100만Btu당 5.721달러로 마감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모건스탠리의 분석이 맞은 겁니다.

천연가스 가격이 급락하자 유가도 떨어졌습니다. 이날 11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9% 하락한 배럴당 77.43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미국의 원유 재고가 예상보다 증가한 데다, 백악관에서 나온 전략비축유 방출 검토 소식도 영향을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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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가 하락하자 금리도 안정세를 찾았습니다.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전날( 1.528%)과 거의 비슷한 1.530%로 마감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부채한도 문제가 풀리기 전에는 금리가 크게 오르긴 어렵다고 본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아침 증시를 짓누르던 또 다른 요인은 부채한도 이슈입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밝힌 연방정부 돈 떨어지는 날(이른바 X 데이트, 10월 18일)이 이제 2주도 남지 않았습니다. 뉴욕시장에서는 미국의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금리가 오르고, 한 달짜리 단기 국채(T-bill) 가격이 급락하는 등 디폴트를 회피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의회가 부채한도를 데드라인 전에 못 할 위험이 있다. 오는 18일이 지나면 재무부가 현금을 소진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대중과 금융시장의 반응이 빠른 정치적 해결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디폴트 상태는 잠시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라는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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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망가질 위기에 처하자 백악관이 가장 급합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는 이날 "디폴트는 심각하고 장기적인 재정·경제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보고서를 두 가지나 퍼냈습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전 JP모간, 인텔, 뱅크오브아메리카, 레이시온, 전미부동산협회 등 재계 지도자를 소집해 부채한도 이슈를 논의했습니다. 공화당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미팅을 마친 바이든 대통령이 공화당을 맹비난한 뒤인 오후 1시 20분께 갑자기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가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다우 지수는 0.30%, S&P500 지수는 0.41% 올랐고 나스닥은 0.47% 상승하면서 거래를 마쳤습니다. 한때 459포인트까지 내리던 다우 지수는 102포인트 오른 채 마감했고, S&P500지수는 한때 하락 폭 1.2%를 다 지워버렸습니다. 미 언론에서 공화당의 상원 원내총무인 미치 맥코널이 부채한도 해결을 위한 단기 제안을 했다고 보도한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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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코널 대표는 오후 2시께 트윗을 통해 자신의 제안을 공개했습니다. "민주당이 정상적 표결 절차를 통해 오는 12월까지 현재 지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고정된 금액으로 부채한도를 연장하는 방안을 통과시키도록 허용하겠다"라고 밝힌 겁니다. 애초 공화당은 민주당에 '단순과반수만 필요한 예산조정 절차를 통해 혼자 부채한도 이슈를 해결하라'라고 촉구했으나, 민주당이 이를 거부하자 정상 표결을 통해 부채한도 문제를 두 달 늦출 수 있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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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민주당의 척 슈머 원내대표는 부채한도를 내년 말까지 유예하는 방안을 표결에 부치려다 연기했습니다. 민주당 소속의 태미 볼드윈 상원의원은 CNN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맥코널의 제안을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는 뜻을 시사했습니다.

만약 이렇게 부채한도가 두 달만 유예된다면 지금은 당장은 한숨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는 12월 초 늦춰놓은 예산안 및 부채한도 문제가 또다시 주식 투자자들을 괴롭힐 수 있습니다.

이날 그 외에도 긍정적 소식이 몇 개 더 있었습니다. 백악관의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이날 스위스에서 회담 후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연내에 화상으로 양자 정상회담을 하기로 미·중 간 원칙적 합의에 도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지난 1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미·중 정상의 첫 만남이 됩니다.

또 ADP 9월 고용 수치도 오는 8일 발표될 9월 고용지표를 앞두고 긍정적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ADP 데이터는 9월 초 연방 실업급여 종료와 관련해 고용이 증가할 것이란 견해와 일치한다. 실업급여 종료는 금요일 노동부 고용보고서 수치도 높였을 것이다. 우리는 9월 비농업 신규고용이 60만 개 증가할 것이란 기존 예상을 유지한다"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월가는 47만 개 증가를 예상합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또 폭락 위기에 처했던, 뉴욕 증시를 구한 두 사람
하나 알아둬야 할 건 ADP 데이터와 노동부 집계 신규고용 수치는 큰 차이를 보일 때가 많다는 겁니다. 월가 관계자는 "만약 9월 신규고용이 10만 개 이하로 나온다면 테이퍼링은 한 두 달 미뤄질 수 있겠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시장이 더 흔들릴 수 있다. ADP 데이터 수준의 고용이 나오길 기대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