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의 몰락’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쓰이던 때가 있었다. 소비의 중심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다. 2018년 미국 126년 전통의 백화점 체인 시어스는 파산했다. 장난감 기업 토이저러스와 의류 업체 포에버21도 무너졌다. JC페니, 니만마커스, 센추리21 등도 차례로 문을 닫았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소매업의 종말(retail apocalypse)’을 예언했다. 새로운 포식자 아마존이 미국 유통업 전체를 집어삼킬 듯했다. 그러나 월마트는 이런 예상을 뒤집고 살아남았다. 오히려 2년 전보다 주가는 더 올랐다. 더그 맥밀런 월마트 최고경영자(CEO)는 “월마트의 강력한 점포와 디지털 역량의 결합이 성공의 열쇠”라고 말했다.
온·오프라인 넘나드는 이커머스 기업으로 부활한 유통공룡 월마트
○‘온라인×점포’ 전략으로 아마존과 맞서다
월마트의 부활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옴니 채널 전략’에 있다. 오프라인 매장을 구닥다리 취급하는 분위기에도 월마트는 매장을 버리지 않았다. 미국 전역에 촘촘히 깔린 오프라인 매장은 오히려 월마트가 가진 최대 장점이었다.

월마트는 소비자들이 신선식품은 직접 눈으로 보고 구매하길 원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유통 과정에서 채소 등이 상하는 것을 걱정하는 소비자도 많았다. 월마트는 2015년부터 온라인으로 신선식품을 주문한 뒤 오프라인 매장에서 가져가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식료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한 뒤 방문 점포와 시간대를 선택해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으면 직원이 주문한 제품을 소비자 차량 트렁크까지 배달해준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이 서비스 이용자는 크게 늘었다. 미국 인구의 90%는 월마트에서 10마일(16㎞), 70%는 5마일, 절반은 3마일 안에 살고 있다. 월마트는 언제든 온라인에서 간편하게 주문하고 집 근처에서 픽업할 수 있는 생필품 인프라였다.

온·오프라인 넘나드는 이커머스 기업으로 부활한 유통공룡 월마트
최근에는 소비자 집 안으로 식료품·의약품 등을 당일 배송하는 ‘인홈’ 서비스도 시작했다. 소비자가 제품을 주문한 근처 매장 종업원이 집 안 냉장고에 직접 물건을 넣어준다. 오프라인 매장이 곧 배송센터가 되기 때문에 거대한 물류센터도 필요 없다. 고객은 배달원 유니폼 상의에 부착된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배달원을 감시할 수 있다.

새로 확보한 온라인 고객을 충성 고객으로 만들기 위한 신규 서비스 ‘월마트플러스’도 지난해 내놨다. 연회비는 98달러로 아마존 프라임(119달러)보다 낮다. 무제한 무료 당일 배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도이치뱅크에 따르면 월마트플러스 도입 1년 만에 가입자 3200만 명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아마존 프라임 가입자의 약 86%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같은 노력으로 2021년 2분기(5~7월) 월마트 매출은 1410억달러, 영업이익은 74억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2%, 21% 증가했다. 실적을 견인한 건 전자상거래 부문이었다. 전년 대비 86% 증가했다. e커머스 매출 비중은 전체 매출의 19%로 확대됐다. 오프라인 유통공룡에서 e커머스 기업으로 체질 바꾸기에 성공한 것이다.
온·오프라인 넘나드는 이커머스 기업으로 부활한 유통공룡 월마트
◆“e커머스 점유율 확대 기대”
월마트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A)과 제휴로 온라인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목표다. 월마트는 2016년 ‘아마존 킬러’로 불리던 전자상거래업체 제트닷컴을 33억달러에 사들였다. 2017년에는 슈바이, 무스조 등 패션쇼핑몰을 인수했다. 2018년 인도의 e커머스 플랫폼인 플립카트 지분 77%를 160억달러에 매입했다. 적극적인 M&A를 통해 온라인 유통에 대한 핵심 기술과 노하우, 전문인력, 브랜드 등을 한꺼번에 확보할 수 있었다.

2020년 6월엔 캐나다 e커머스 플랫폼 업체 쇼피파이와 손을 잡았다. 쇼피파이는 개발자 없이도 쉽게 쇼핑몰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업체다. 재고관리, 결제, 물류 등 쇼핑몰 운영에 필요한 서비스를 한꺼번에 제공하면서 최근 전자상거래 업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이번 제휴로 쇼피파이의 플랫폼을 이용하는 판매업체들은 월마트닷컴에서도 물건을 팔 수 있게 됐다. 입점 비용이 따로 없다. 물건이 팔린 만큼 월마트에 수수료를 지급하면 된다. 월마트는 쇼피파이 플랫폼을 이용하는 판매업체를 한꺼번에 포섭할 수 있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을 통해 월마트는 2020년 5월 처음으로 이베이(4.5%)를 제치고 미국 전자상거래 시장 점유율 2위(5.8%)를 차지했다.

월마트가 온라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지만 오프라인 매장을 포기한 건 아니다. 오히려 더 강화하고 있다. 월마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을 강화해 아마존이 제공할 수 없는 경험을 고객에게 제공하겠다는 목표다. ‘슈퍼센터’ 전략이 대표적이다. 병원, 미용실, 은행 등이 입점해 있기 때문에 월마트 슈퍼센터 한 곳에서 한꺼번에 볼일을 끝낼 수 있다. 24시간 열려 있어 커뮤니티 모임 장소로도 활용될 수 있다. 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발생하는 사람들의 활동 데이터를 월마트는 마케팅에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온·오프라인 넘나드는 이커머스 기업으로 부활한 유통공룡 월마트
월마트는 최근 2022년 연간 실적 가이던스를 상향 조정했다. 매출은 올해 대비 6~7%, 영업이익은 11.5~14% 증가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 기준 매장 매출 증가율이 5~6%대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e커머스 시장 점유율 확대도 기대되고 있다”고 전망했다.

심성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