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韓 떠나는 삼성, 日 떠나는 도요타?
“내가 이재용 부회장이면 삼성그룹 본사를 해외로 옮긴다.” 한국 재계 관계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농반진반의 자조다. 일본에도 도요타가 차라리 해외로 나가는 게 낫겠다는 동정론이 있다. ‘한국을 떠나는 삼성’은 이 부회장이 겪는 형사 처벌의 위험성과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정치권의 ‘삼성 때리기’ 때문에 나오는 얘기다.

‘일본을 떠나는 도요타’는 오너 리스크가 아니라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두드러진 ‘일본 경제의 6중고’ 탓이다. 엔화가치 상승, 무역협정 체결 지연, 높은 법인세, 노동시장의 경직성, 환경 규제, 전력 부족 및 비용 증가 등이 일본 기업을 옥죈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의 6중고에 시달리다 못해 혼다·닛산자동차는 해외로 생산거점을 옮기는 ‘어웨이 전략’으로 전환했다. 일본 3대 자동차 기업 가운데 도요타만 자국 생산을 유지하는 ‘홈 전략’을 고수했다.

'6중고' 개선되니 '新6중고'

일본 내각부는 지난달 24일 발표한 경제재정백서를 통해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 경제의 과제였던 6중고가 전반적으로 개선됐다”고 진단했다. 도요타가 일본을 떠날 우려도 줄어들었을까. 반대다. 일본 경제전문가들은 “일본 기업들이 ‘신(新)6중고’에 신음한다”고 지적한다.

이시카와 도모히사 일본종합연구소 거시경제연구센터 소장은 미흡한 코로나19 대책, 저출산·고령화, 디지털화 지연, 경직된 행정관료 조직, 반도체 부족, 세계 최악의 재정적자를 일본 경제의 신6중고로 정의했다.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자동차산업은 ‘시크릿(SECRET)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공급망 위기, 에너지 비용, 탈석탄화, 자원쟁탈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 신보호주의 무역의 영단어 첫 글자를 딴 용어다. 도요타가 일본을 떠나는 게 낫겠다는 푸념도 일본에서 자동차를 제조해 수출하는 것보다 현지 생산이 훨씬 유리해졌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경영 환경이 불안정해지면 기업들은 설비투자를 줄이고 사내 유보금을 늘린다. 2019년 말 기준 일본 기업의 사내 유보금은 475조161억엔(약 5072조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설비투자는 44조394억엔으로 11년 만에 처음 감소세로 돌아섰다.

대관 업무는 일본 기업에도 부담이다. 2019년 도쿄에 본사가 있는 기업의 매출 대비 이익률은 24%로 33%인 교토 본사 기업보다 크게 낮았다. 도쿄 기업의 채산성이 떨어지는 이유를 일본 재계에서는 ‘가스미가세키(도쿄의 관청가: 일본 관료조직을 상징함) 코스트’라고 분석한다.

"한국 떠나고 싶다"는 기업인들

일본 경제와 자동차산업의 신6중고를 뜯어보면 대부분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고충이다. 6중고로는 부족하다는 비명마저 나온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획일적인 주 52시간제, 대폭 강화된 환경·안전 규제, 법인세율 인상,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 노조 친화적인 정책 등이 연이어 도입돼서다. 기업규제 3법(공정거래법·상법·금융그룹감독법)에 이어 경영자의 형사 처벌 위험을 높이는 중대재해처벌법도 통과됐다.

그러니 기업인 상당수가 한국을 떠나고 싶어한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기업인 5명 중 1명이 “사업장의 해외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도요타의 ‘탈일본’이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로 떠오른 것처럼 삼성의 ‘탈한국’이 현실화하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