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집중분석] '기·승·전·엔비디아'…AI·자율주행·메타버스로 가는 길은 엔비디아로 통한다
엔디비아는 최근 '핫한' 테마형 상장지수펀드(ETF)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종목이다. 로보틱스, 인공지능(AI), 블록체인, 암호화폐, 데이터센터, 자율주행, 메타버스, 우주 등 관련 생태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나스닥, 반도체,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추종하는 상품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 커진다. 미국에서 거래되는 ETF 중 엔비디아를 담고 있는 종목은 308개에 달한다.

◆인텔 피하려다 인텔 넘어서다

엔비디아가 처음부터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만 이민자 출신 미국인 젠슨 황 CEO는 LSI로직, AMD에서 중앙처리장치(CPU)를 개발하던 개발자였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컴퓨터는 사무용 기기였다. 젠슨 황은 컴퓨터로 게임을 하거나 동영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1993년 침대 2개가 다인 아파트에서 그래픽 반도체 설계 엔지이어 커티스 프리엠, 전자기술 전문가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손잡고 엔비디아를 설립했다.

회사를 시작할 때 젠슨 황의 목표는 CPU를 만드는 것이었다. 멀티미디어 콘텐츠 처리에 특화된 CPU로 지금으로 치면 CPU와 GPU를 합친 APU(AMD가 만든 마케팅 용어)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모든 CPU 기술을 독점하고 있었던 거인 인텔의 벽을 넘어야 했다. 작은 스타트업이었던 엔비디아는 잘 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1995년 첫 제품 NV1를 출시했다. 하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나갔다. 2D와 3D, 음성까지 모든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한 장의 카드로 처리하다보니 가격은 비싸졌고, 독자 기술을 고집하다 호환성이 떨어졌다. 시장은 외면했다.

잇따른 실패 끝에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1997년 NV3를 선보였는데, 이 제품이 대박이 났다. 당시 3D 게임 시장이 성장하면서 언리얼, 퀘이크, 레인보우식스 등 컴퓨터로 3D 게임을 즐기길 원하는 사용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재기에 성공한 엔비디아는 1999년 첫 지포스 제품군인 '지포스256(NV10)'을 공개한다. CPU의 도움 없이도 GPU 자체적으로 3D 명령어를 처리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당시 PC 업계에서는 GPU(그래픽처리장치)라는 용어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CPU 개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엔비디아가 만든 '마케팅 용어'라고 폄하했다. 하지만 2D, 3D 콘텐츠 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더이상 CPU만으로 그래픽 데이터를 처리할 수 없게 됐고, GPU라는 용어는 일반명사로 자리잡았다.
[종목 집중분석] '기·승·전·엔비디아'…AI·자율주행·메타버스로 가는 길은 엔비디아로 통한다
◆미리 준비한 AI, 자율주행 시대

엔비디아의 주가 그래프를 보면 2번의 빅 사이클이 등장한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주가는 약 3배 뛰었다. 분기점이 된 것은 구글 딥마이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등장이다. 2016년 AI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후 전 세계적으로 AI 산업이 급성장했다.

AI를 구현하는 핵심 기술은 '딥러닝'이다. 사람의 신경망을 모방한 수많은 인공 신경망을 통해 기계가 학습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단순 연산이 반복돼야 한다. 하나의 복잡한 명령을 처리하는 것은 CPU가 빠르지만, 단순한 계산 수십 개를 한꺼번에 푸는 것은 병렬 구조의 GPU가 신속하다.

엔비디아는 이런 미래를 미리 준비했다. 경쟁사인 인텔과 AMD가 관련 기술을 홀대할 때 GPU 병렬 처리 기술인 CUDA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시장의 표준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2015년에는 자율주행차 시대를 예측하고 준비했다. 당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나눈 인터뷰에서 젠슨 황 CEO는 "이제 자동차는 바퀴 달린 컴퓨터가 될 것이며, 앞으로 자동차는 영리하게 거리를 달리는 유쾌한 컴퓨터가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엔비디아의 GPGPU(AI 연산용 반도체)가 인텔, AMD 등을 제치고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이 단순히 '운'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GPU 품귀 현상까지 만들었던 암호화폐 열풍이 꺼지면서 2018년부터 엔비디아 주가는 잠시 내리막길을 걸었다. 하지만 2019년 중순부터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때의 상승세는 첫 번째 사이클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약 2년만에 주가는 7배가 됐다. 2020년 7월 8일 시가총액은 2513억 달러(약 300조원)으로 처음으로 미국 반도체 1위 기업이었던 인텔을 제치고 왕좌에 올라섰다.

엔비디아는 풍부한 실탄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섰다. 이번에는 데이터센터였다. 지난해 상반기 이스라엘 반도체 설계 회사 멜라녹스 테크놀로지를 인수했다. 멜라녹스의 대표상품은 '인피니밴드'다. 데이터센터 서버와 스토리지 시스템을 연결해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전송하는 시스템이다. 멜라녹스 인수 효과로 지난해 2분기 엔비디아 내 데이터센터 사업부가 게이밍 사업부를 제치고 최대 매출을 내는 사업부가 됐다.

코로나19로 인한 '집콕'과 재택근무 확산은 엔비디아가 다시 한 번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게임기와 PC에 들어가는 GPU 수요가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기업들이 정보기술(IT) 인프라를 확충하면서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용 반도체사업도 빠르게 성장했다. 올해 2분기 데이터센터 사업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5% 성장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종목 집중분석] '기·승·전·엔비디아'…AI·자율주행·메타버스로 가는 길은 엔비디아로 통한다
◆CPU 꿈 이루자…ARM 인수 추진

최근에는 메타버스 시대의 '플랫폼'을 까는 역할도 하고 있다. '엔비디아 메타버스'라 불리는 '옴니버스'는 유명 3D 제작 툴이 한 곳에 모이는 오픈 플랫폼이다. 플랫폼들의 플랫폼인 셈이다. 마야, 언리얼엔진 등 서로 다른 3D 툴간 작업 내용을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에는 어도비, 블렌더 등으로 옴니버스 생태계를 확장했다. 블렌더는 로블럭스, 제페토 등에 쓰이는 오픈소스 3D 제작 툴이다. 옴니버스는 구독형 서비스다. 이를 구동하기 위한 하드웨어 최소 요구사항은 엔비디아의 쿼드로 RTX 8000 그래픽 카드 두 장이다. 옴니버스 고객 기반이 넓어질수록 그래픽카드 수요가 늘어나는 구조다.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수직적 통합을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쿼드로 그래픽카드를 판매하는 전문 시각화 사업부의 2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156% 성장했다.

엔비디아에게는 아직 못 다 이룬 꿈이 있다. 바로 '두뇌' 역할을 하는 CPU(중앙처리장치),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시장이다. 영국 ARM은 반도체 IP(설계자산)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다. 퀄컴 삼성전자 애플같은 기업도 ARM에서 반도체 설계도를 받아 제품을 만든다. ARM은 CPU나 AP 설계 능력을 갖추고 있다. 젠슨 황 CEO가 ARM 인수에 40조원을 베팅한 배경이다.

엔비디아가 공룡 기업이 될 것을 우려한 경쟁사들은 일제히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다. 퀄컴과 삼성뿐만 아니라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거나 뛰어들 예정인 구글, 테슬라, 아마존 등도 반대 뜻을 나타냈다.

이렇듯 엔비디아는 AI, 자율주행, 클라우드, 메타버스 시대의 인프라를 까는 역할을 한다. 80배에 달하는 높은 주가수익비율(PER)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연일 고공행진하는 배경이다. 미국 내 상장된 기업 중 시가총액 9위에 달하는 데다 각종 테마 ETF도 엔비디아를 경쟁적으로 편입하고 있어 패시브 자금까지 몰리고 있다.

엔비디아를 담고 있는 테마형 ETF로는 글로벌X 로보틱스&AI ETF(BOTZ), 앰플리파이 트랜스포메이셔널 데이터 쉐어링 ETF(BLOK), 글로벌X 비디오게임&e스포츠 ETF(HERO), 라운드힐 볼 메타버스 ETF(META), 글로벌X 데이터센터 리츠 ETF(VPN) 등이 있다.

고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