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무턱대고 가상자산사업자(암호화폐거래소) 신고 등록을 받아줬다가 그중에서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내면 금융당국에 다 책임지라고 난리 치지 않겠느냐.”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22일 암호화폐거래소 등록 절차를 너무 까다롭게 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같이 반문했다.

금융위가 최근 암호화폐거래소 25곳에 대한 현장 컨설팅 결과를 공개한 것도 이 같은 우려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금융위는 지난 16일 12개 관계부처 합동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암호화폐거래소 25곳을 대상으로 6월부터 한 달간 시행한 현장 컨설팅 결과 신고 수리 요건을 갖춘 업체가 단 한 곳도 없었다고 밝혔다. 내부통제 수준이 낙제점을 면치 못했고 자금세탁 위험을 식별·분석하는 체계도 불충분해 관련 범죄 등 위법행위 탐지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가상자산사업자들은 주식시장에서 한국거래소(거래 체결 및 시세 제공), 금융감독원(공시 및 시장 감시), 예탁결제원(증권 예탁 및 대체), 일반 증권사(매매 중개) 등으로 분화돼 있는 기능을 모두 단독으로 수행하고 있다”며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못해 공정한 시장 질서, 엄격한 고객 자산 관리, 시스템 안정성 등이 제대로 확보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거래소의 실명계좌 연계 책임을 은행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금융당국은 “오해가 있다”고 항변했다. 금융정보분석원(FIU) 관계자는 “현행 자금세탁방지법에 따르면 금융회사에 대해 계좌 등의 실소유주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고객확인 의무, 1000만원 이상 고액 거래에 대해 30일 내 FIU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 자금세탁 의심거래 보고 의무 등이 명시돼 있다”며 “암호화폐에 대해서도 이 같은 의무 이행이 가능할지 검토하는 것은 금융당국이 아니라 은행의 고유 책무”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은행들이 추가 실명계좌 연계를 기피하는 상황에서 이미 실명계좌를 발급받은 4대 거래소 외엔 모두 문을 닫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FIU는 “실명계좌 연계가 아니라 ISMS 인증 요건만 갖춰도 일단 신고를 받아줄 방침”이라며 “물론 원화 거래는 중단되겠지만 코인 간 거래 등 사업은 계속 영위할 수 있고 등록 심사 기간에 요건을 추가 보완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등록 기준을 맞출 수 없는 사업자들은 결국 폐업할 수밖에 없겠지만 다음달 24일 시한을 앞두고 이미 문을 닫은 업체가 적지 않음에도 별다른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