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 신화’가 신화로 불리는 이유는 성공 사례가 드물어서다. 많은 직장인이 큰 꿈을 품고 입사하지만 수십억원대 연봉을 받는 임원이 되는 사람은 수만 명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최근엔 10년차 안팎의 직원이 단숨에 수억원을 벌어들이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우리사주를 사거나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받아 대박을 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테크기업을 중심으로 기업공개(IPO)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데다 주가지수도 역사적 고점 수준에 머물다 보니 상장으로 돈방석에 앉는 20~30대 ‘영리치’가 대거 탄생하고 있다.
SK바사 17억·하이브 7.8억…단숨에 '주식부자' 된 2030 샐러리맨

IPO 풍년에 줄줄이 돈방석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국내에 상장한 기업의 공모 규모는 총 13조5859억원(스팩·주식예탁증권 제외)으로 이미 연간 기준 사상 최대 규모를 넘어섰다. 지난해 1년간 공모금액(4조5424억원)의 세 배가량 많다. IPO를 할 때 보통 공모물량의 20%를 우리사주조합에 배정하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상장기업 임직원들이 받아간 우리사주는 2조7100억원어치에 이른다.

최근 가장 큰 ‘잭팟’이 터진 곳은 SK바이오사이언스다. 지난 3월 공모가 6만5000원에 상장한 SK바이오사이언스는 5개월 만에 28만8500원까지 치솟았다. 상장 당시 직원 한 사람당 받아간 공모주는 평균 4억9386만원어치로 예상 시세차익은 17억원에 달한다.

3월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한 쿠팡에서도 영리치가 대거 생겨났다. 직원들에게 회사 주식을 주당 평균 2100원(1.95달러)에 살 수 있는 스톡옵션을 지급했다. 공모가(주당 35달러)가 20배에 달하다 보니 수십억~수백억원의 평가차익을 거둔 직원이 속출했다.

지난 7일 상장한 카카오뱅크는 이직으로 ‘대박’을 낸 직원들의 산실이 됐다. 카카오뱅크는 2016년 출범 당시 주요 주주인 국민은행에서 직원 15명을 받는 것을 비롯해 외부에서 인재를 대거 영입했다. 새로운 도전에 목마른 20~30대가 주를 이뤘다. 이들의 베팅은 5년 후 ‘공모주 수익률 222%, 1인당 평가수익 5억4450만원’이란 결과를 냈다. 스톡옵션 행사 기회도 남아 있다. 13일 종가(7만6600원) 기준 한 사람당 평균 스톡옵션 행사수익은 6억7823만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최근 테크기업 몸값 고공행진도 영리치 탄생을 부채질하고 있다. 올해 초 게임회사 넥슨을 시작으로 테크기업들의 개발자 모시기 전쟁이 펼쳐지면서 ‘1억원 연봉’ 보장은 물론 주식 교부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사주와 스톡옵션을 제공하고, 수년간 다른 회사로 이직하지 않는 조건으로 주는 ‘사이닝 보너스’도 일반화됐다.

스타트업 직원들도 ‘대박’ 꿈

비상장 테크기업들도 잇따라 조(兆) 단위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대박’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최근 몸값이 8조원대로 평가받은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는 전 직원에게 최대 1억원 규모의 스톡옵션을 지급했다. 소프트뱅크로부터 2조원을 수혈받은 야놀자도 전 직원에게 회사 주식을 무상으로 지급했다. 현재 몸값만 10조원으로 평가된 만큼 추후 상장에 안착할 경우 직원들의 지분 가치도 수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회사가 대형 인수합병(M&A) 대상이 되면서 직원들이 덩달아 혜택을 본 곳도 있다. 올해 들어 영상앱 ‘아자르’를 운영하는 하이퍼커넥트는 1조9000억원에 미국 매치그룹에 매각됐고, 스타일쉐어·29cm도 무신사에 3000억원에 팔렸다. 창업주 외 회사 주식을 교부받았던 직원들은 매각 과정에 참여해 수억원에 달하는 차익을 누렸다.

‘잭팟’ 터진 뒤 퇴사도 속출

상장을 앞둔 기업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무조건 대박 기회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IPO 후 주가가 내리막을 탈 수도 있어서다. 크래프톤의 우리사주를 매입한 직원들은 현재 주가 기준으로 1인당 평균 1669만원의 평가손실을 보고 있다.

우리사주조합에 가입돼 있으면 상장 후 곧바로 주식을 팔 수 없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회사 주가가 하늘을 찌를 때 사표를 내는 직원들이 나오는 이유다. SK바이오팜은 지난해 상장 직후 70여 명이 한꺼번에 퇴사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회사의 성장 과정에서 일반 직원도 부를 거머쥐는 사례가 늘어난다는 건 분명 긍정적이지만, 이를 지켜보는 평범한 직장인의 박탈감 역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의명/김진성 기자 uimyung@hankyung.com